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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가정 중 택하라는 아내에 회사 줬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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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호근(60) 와이지-원 대표가 인천 부평에 위치한 본사 1층 로비에서 이 회사에서 만드는 엔드밀과 같은 다양한 절삭공구를 보여주며 흐뭇해하고 있다. 송 대표 뒤로는 회사 로고와 이 회사 제품이 수출되는 해외 지역을 표시한 세계지도가 보인다. [부평=김성룡 기자]

인천 부평역에서 차로 30분쯤 달려 도착한 와이지-원(YG-1) 본사에서 만난 송호근(60) 사장. 한 달 전 약속을 하고 지난달 11일 겨우 시간을 잡아 찾아갔지만 그는 단 30분도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있질 못했다. 이날 갑자기 애플 중국사업장 인사들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절삭공구 회사인 와이지-원은 애플의 아이폰을 만드는 중국 폭스콘에 1년에 500만 달러(약 58억원) 정도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송 사장은 일일이 이들을 공장 안으로 안내하고 공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품의 특징을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다. “실무자가 해도 되지만 사장이 하는 게 제일 정확하고 신뢰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와이지-원은 분당 5만 번 정도 회전하며 휴대전화 틀이나 자동차·항공기 부품을 깎아내는 엔드밀(end mill)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송 사장은 1981년 말, 29살의 나이에 창업을 결심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 졸업을 앞둔 77년에 계기가 만들어졌다. 부친이 부사장으로 있던 신발업체 회장에게 세배를 갔다가 “신발로는 회사의 영속이 어려울 것 같아 절삭공구 사업 프로젝트를 하려는데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술제휴를 맺은 미국업체에 1년간 가 생활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해 3월 미국으로 떠난 송 사장은 1년9개월을 영어와 씨름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밤이면 24시간 열려 있는 약국을 방문해 종업원들과 이야기하곤 했지요.” 외국 바이어를 부담 없이 만나는 일도 그때 배운 영어 덕이다.

 귀국 후 송 사장은 절삭공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각종 공구의 원가를 비교해보던 그는 엔드밀에 눈독을 들였다. 원자재값이 판매가의 3%밖에 안 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건의했다. 하지만 미적거리는 경영진을 보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마침 회사 야유회에서 몸을 다쳐 8개월간 휴직하면서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그 순간부터 엔드밀이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죠.”

 송 사장은 81년 12월 부모집 주소로 ‘양지원(養志園)공구’라는 사업자 등록을 냈다. 양지원은 형제들이 부모님께 사 드렸던 농장의 이름이었다. 이듬해 4월에는 공장을 샀다. 현재 회사 이름인 와이지-원은 ‘양’과 ‘지’의 알파벳 첫 글자를 땄다. 아라비아 숫자 ‘1’에는 1등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1등’. 이 단어는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등장했다. “올림픽은 제한된 종목이어서 금메달 따기가 힘들지만, 비즈니스는 분야가 너무 많아 그중 하나에 전념하고 열심히 하면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송 사장은 만나는 누구한테나 이 말을 한다.

  송 사장은 특히 수출기업일수록 1등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사업을 하기 위해선 술도 마셔야 하고 골프도 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하기 싫었어요. 오로지 잘 만들고 잘 파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었죠.” 그런 생각에 회사 설립 초기부터 수출에 매달렸다.

 공식적인 회사의 창립 기념식은 82년 10월 14일 치러졌다. 하루 3~5시간만 자면서 직원들과 동고동락을 해 샘플을 만들어낸 후였다. 이틀 뒤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스웨스트가 취항하는 도시면 어디든 갈 수 있는 350달러짜리 표를 얻고, 일주일에 99달러 하는 렌터카를 빌려 43일간 미국 전역을 누볐다. 45㎏에 달하는 샘플 가방도 직접 들고 다녔다.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귀국했으나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자체 조사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이미 수출 주문을 받아 2만3000달러어치를 통관시킨 상태였지만 선적을 유보시켰다. “양심이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포기했죠.” 부친 집을 담보로 3억원을 꿔 다시 제품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몇 달 후 고객이 왔을 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선적했다 회수한 제품을 60% 가격에 사 주겠다고 해서 흔쾌히 응했다. 이게 다시 문제가 됐다. 그해 말 외국에서 만난 바이어가 훨씬 싸고 질 좋은 한국산 물건이 있다며 제품을 보여줬는데, 바로 싸게 팔아치운 불량품이었다. “그 이후론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검사 결과가 난 물건은 절대 팔지 않았습니다. 모두 폐기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죠.”

  두 번째 위기는 97년 여름에 감지됐다. 외환위기의 징조였다. “은행들이 이상했어요. 사업을 좀 하다 보니 그때 그 감이 맞았더라고요.” 송 사장은 무엇보다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해외 바이어들에게 모두 전화했다. 현금 결제를 해주면 값을 많이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 다행히 바이어들이 흔쾌히 승낙했고 현금 확보가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자 주 거래 은행이 퇴출되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X-POWER’라는 신제품이 활로를 찾아줬다. “일본과 스위스에만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벤치마킹해 고속가공에 적합한 엔드밀을 개발해냈죠. 가격도 경쟁사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98년 와이지-원은 40%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외환위기를 넘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도 이를 악물어야 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수주가 줄면서 2009년 매출이 1155억원으로 2008년의 1748억원보다 34% 감소했다. 146억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매출이 1631억원으로 회복됐고 순이익도 107억원을 기록했다. 송 사장은 “2009년의 손실은 주문 감소 탓이기도 했지만 투자를 엄청나게 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7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결국 투자 때문에 순손실이 난 거죠.” 그 와중에도 직원들을 한 명도 퇴사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힘이 돼서일까. 지난해 와이지-원은 매출 2556억원에 19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이 세 번의 위기보다 더 큰, 송 사장도 두 손을 들어야 했을 법한 위기는 가정에서 비롯됐다. “해외 출장을 연 40회 이상 나가다 보니 집사람이 ‘출장을 포기하든지 가족을 포기하든지 양자 선택하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의 분야에서 1등을 하려면 다른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송 사장도 이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아예 작은 회사 하나를 맡겨 버렸습니다. ‘당신도 경영자가 돼서 출장도 다니고 하라’고 말이죠. 맡긴 회사는 그 전에 인수를 했던, 절삭공구 관련 부품업체였습니다.” 당시 부인에게 넘겼던 연 매출 10억원짜리 회사는 현재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 부부의 갈등도 해결됐다.

 송 사장의 사무실 책상에는 가로 10㎝, 세로 5㎝ 정도의 작은 나무 푯말이 놓여 있다. 빨강 글씨로 ‘비 포지티브. 예스!-예스!-예스!’(Be Positive. Yes!-Yes!-Yes!)라는 말이 적혀 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산악반에 들어가 암벽등반을 했죠. 밑이 낭떠러지가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공포심을 가지면 안 되고 적극적 사고를 가지면 암벽 등반이 가능하듯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송 사장은 신입사원들에게도 같은 맥락에서 ‘호랑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라’고 조언한다. 호랑이 꿈을 꾸면 고양이라도 되지만, 고양이 꿈을 꾸다간 아무것도 안 되는 수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업에 관한 한 그는 철저한 시장주의자고 원칙론자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강조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도 철저히 자율에 맡기고 시장 논리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반성장지수라는 점수로 기업들을 평가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중소기업 업종을 따로 정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깎아내릴 수 있죠. 대형마트 규제 같은 것도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놓는 게 순리일 겁니다.”

 그의 목표는 ‘삼성보다 좋은 복지와 급여를 제공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 최근 와이지-원은 지식경제부가 선정하는 ‘월드클래스 300’에도 포함됐다. 유망 중기를 선별해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로 인해 회사 설립 이래 처음으로 정부의 연구 지원금을 받게 됐다.

 송 사장은 장애인 중심의 절삭공구업체도 하나 만들려고 구상 중이다.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다. 현재도 국내 종업원 700여 명 중 6.3%가 장애인이다.

중앙일보-대한상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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