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두 손 활짝 벌린 팔손이 나무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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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리나라 토종 나무의 이파리들은 작고 아담한 게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계절의 변화가 큰 곳에서는 이파리가 크지 않은 게 많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토종 나무 중에도 열대 지방에서나 봄직한 넓은 이파리를 가진 나무도 있어요.

바로 팔손이 나무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팔손이 나무는 남해의 거제도 해변 산간이 원산지인 두릅나무 과의 상록 관목입니다. 이 나무의 이름이 팔손이가 된 것은 이파리의 특이한 모양 때문입니다. 손바닥 모양으로 일곱에서 아홉 가닥, 평균 여덟가닥으로 나뉘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황록색을 띠고 있는 이 이파리의 크기도 예사롭지 않지요. 작은 이파리도 20센티미터가 넘을 정도이고 잘 자란 이파리는 40센티미터를 넘기기도 합니다. 이 이파리 하나만 봐서는 열대 식물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팔손이는 열대 식물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쫘악 펼친 이파리의 모양이 마치 가진 것 없는 걸인이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소'라고 두 손을 펼쳐 내놓은 듯한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잎이 넓다보니, 직사광선을 바로 받으면 잎이 탑니다. 잎이 넓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운명이겠지요. 그래서 양지 바른 곳에 심어진 팔손이의 이파리는 끝부분이 타들어가 얼룩진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이런 특징 때문에 팔손이를 잘 키우려면 양지바른 곳보다는 반 음지가 좋습니다. 또 양지에서는 잎이 크게 자라지 않고 작아져서 볼품이 없기도 하답니다.

팔손이는 토질은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데, 수분이 적당한 게 좋습니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는 울타리 주변에 많이 심어온 나무입니다. 요즘은 이파리가 넓어 시원한 감을 준다고 해서 관상용으로 화분에서도 많이 키우는데, 화분에서 키울 때에는 물을 잘 주어야 합니다.

팔손이의 꽃은 늦가을인 10월부터 12월에 피어납니다. 첨부하는 사진들은 제가 지난 해 11월에 천리포수목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화려하달 수 없는 유백색의 꽃이지요. 꽃이 필 때 그 큼지막한 이파리들은 사진에서 보듯, 아래로 처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다지 볼품이 없는 이 나무가 그나마 꽃이 필 때 자신의 꽃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게 내세우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해 봄, 5월 께가 되면 꽃이 달렸던 자리에 둥글고 까만 열매가 맺힙니다. 지름 3밀리미터 정도의 녹두알 크기의 열매는 꽃이 피었을 때보다 훨씬 눈에 들어옵니다. 질박한 멋을 가진 나무라 할 수 있는 팔손이가 한해 중 가장 눈에 띄는 때가 바로열매를 맺고 있는 이 5월 께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꽃에 특별한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꽃에 벌 나비가 아니라 파리가 꼬인다는 사실도 우습지요. 파리가 모여드는 꽃, 참 어울리지 않는 궁합입니다.

팔손이는 땅바닥에 납작 붙어서 자라기도 하지만 잘 자라면 약 4미터 정도까지 자랍니다. 줄기는 그리 굵지 않은 나무이며, 그늘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나무 밑에서 많이 자라지요. 남부지방의 시골에서는 그 넓은 잎 때문에 가리개 용으로 많이 심고 있습니다. 쓰레기통 앞에 미관을 위해 심거나 방풍림으로 심기도 합니다. 공해에도 강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공장지대의 조경용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고규홍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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