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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16) 은희경 장편 『태연한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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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은희경

예술가는 따분한 걸 참지 못한다. 일종의 ‘안티 패터니스트(anti-patternist)’랄까. 지루하고 따분한 삶의 패턴으로부터 달아나기. 이것이 예술가의 일이다.

 은희경의 일곱 번째 장편 『태연한 인생』(창비)은 패턴과 한 판 승부를 벌인다. 언어 예술가인 소설가가 패턴과 싸우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번엔 어딘가 노골적이다. 그 싸움은 소설이라는 링 안팎에서 치열하게 펼쳐진다.

 먼저 링 밖. 은희경은 ‘작가의 말’에서 글쓰기의 괴로움을 털어놨다. “지난해 3월 장편소설을 쓰려 했지만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대체 무슨 혼란일까.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작가로서 어떤 ‘패턴’에, 상투성에 빠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작가는 제 글쓰기의 패턴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게다. 1995년 등단 이후 “은희경은 하나의 장르”(문학평론가 신형철)로 자리잡았더랬다. 그 확고한 세계 덕분에 그는 웬만한 문학상을 다 휩쓸었지만, 그 확고한 세계가 일종의 패턴으로 굳어지는 사태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태연한 인생』은 그 고민의 결과다. ‘은희경’이라는 패턴으로부터 달아나기. 그 탈출은 성공했을까.

 지금부터는 링 안의 싸움이다. 소설은 퇴락한 소설가 요셉과 그의 과거 연인 류의 이야기다. 류의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가 작은 축이고, 요셉이 ‘위기의 작가들’이란 영화에 출연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며칠간의 소동이 큰 축이다.

 작가는 자신의 패턴을 탈출하려는 의지를 곳곳에 흘려뒀다. 주인공 요셉은 종종 작가를 대변하는 듯한 말을 늘어놓는다. “예술이 하는 일은 한마디로 패턴을 깨는 거야” “우리는 부조리한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패턴에 굴복하며 살고 있지” 등등.

 하지만 정작 요셉 자신은 예술가의 단독성을 주장하면서도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반면 류는 어떤 삶의 원형을 따라 성장했다. 류의 아버지는 매혹적인 삶을 좇는 일탈적인 인물, 어머니는 반복되는 삶을 견디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류가 요셉을 떠난 것도 그에게 매혹과 지속이라는 부모의 삶이 중첩돼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소설은 기승전결의 문법을 위반한다. 시나리오 등 형식도 실험한다. 그러니 은희경의 패턴은 극복됐는가. 아닌 것 같다. 이번에도 은희경의 세계는 위악과 냉소로 재현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패턴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요는 예술가는 자신만의 패턴을 ‘창조’한다는 사실. 장르는 창조적인 패턴의 세계다. 그러니 작가는 염려하지 말 일이다. 사람들은 은희경이란 장르의 단독성을 사랑해왔다. 은희경은 은희경일 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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