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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에서 금서된 사연은? 엄마에겐 교양, 아들에겐 이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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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서(禁書)로 되돌아본 한국 현대사 ‘나쁜 책’이 있을까. 서울중앙지법이 일부 출판사와 저자가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반발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방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나쁜 책’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사상의 자유를 들어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일러스트=강일구]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읽지 못할 책은 없다. 오랫동안 금서라는 낙인과 함께 봉인됐던 『자본론』 등 마르크스 저작들이 변형·발전해 수많은 책으로 출간되는 시대다. 국방부 일부 금서를 제외하곤 사상의 제약이 그만큼 사라진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의 금서는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의 부침과 맥을 함께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은 무조건 금서였다. 신채호의 『을지문덕』과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물론 일본 작품을 번안했다는 의혹이 있는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제는 1909년부터 ‘출판법’을 공포해 사전검열과 함께 일원화된 금서 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이후 권력자들은 금서 정책으로 체제의 안정화를 도모했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정부가 득세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이른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책은 독자의 손에 들려질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마르크스의 저작들, 그 중 『자본론』은 금서 중에서도 첫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미완의 혁명인 4·19의 실패와 5·16 군사 쿠데타는 금서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했다. 군사정권은 사상과 인권 탄압 수단으로 금서 목록을 작성했다. 다양한 이념 서적이 비판적 지식인과 대학생을 잡아넣는 구실로 사용됐다.

 그 사이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칼 마르크스를 부르던 이름인 ‘맑스’와 막스 베버의 ‘막스’를 구분하지 못해 군사정부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마저 금서로 지정했다.

 

금서(禁書)는 위험한 책이다. ‘위험’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금서, 혹은 불온서적이란 꼬리표를 달았던 책들. 왼쪽부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권정생의 『몽실언니』, 조정래의 『태백산맥』,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티모시프리그·피더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

5공화국 당시 문공부는 출간 직후부터 독자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은 권정생의 『몽실언니』를 ‘문공부 추천도서’로 선정했다가 출간 이듬해인 1985년 명확히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판매금지 목록에 포함시켰다. 몽실에게 호의를 베푼 인민군 청년과 여자 인민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풍문만 돌고 돌 뿐이다.

 『몽실언니』는 동화책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 4월 100만 부 판매 돌파 기념판을 내기도 했다. 그간의 금서 지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처럼 선정 기준이 지극히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금서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다. 금서의 수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태백산맥』은 이적성 여부를 놓고 오랜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고, 그 와중에 밤마다 작가의 집 담장 너머로 돌이 날아들고, 작가는 새벽마다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여부를 조사하던 대검찰청은 1994년 1년 여의 내사를 끝내고 “일반인이 교양으로 읽으면 괜찮지만 대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 표현물 탐독죄로 의법 조처한다”는 발표문을 냈다. 작가는 이 말을 “안방에서 어머니가 읽으면 교양물이고, 건넌방에서 대학생 아들이 읽으면 이적 표현물”이라고 패러디했는데, 한동안 이 말이 일반에 널리 회자됐다.

 단행본만 금서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잡지도 금서로 지정돼 정간과 폐간 등 수난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잡지가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 사건으로 유명한 ‘사상계’다. 1950~60년대 독재 정권에 맞선 비판적 지성지였던 ‘사상계’는 4·19 직후에는 발행부수가 8만부에 이를 정도로 지식인 사회에 영향력이 컸지만 ‘오적’을 수록했다는 이유만으로 폐간당했다. ‘기독교사상’ ‘창작과비평’ ‘뿌리깊은나무’ 등의 잡지도 권력의 서슬에 고초를 겪었다.

 최근 논란이 됐던 국방부 불온서적 목록에도 아이러니가 있다. 군대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세간에서는 이미 베스트셀러였던 책이 포함됐다. 역설적으로 불온서적 지정 자체가 이 책들의 판매를 부추기기도 했다.

 대표적인 책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신자유주의 폐단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 책의 기조가 젊은 장병에게 불온하게 비쳐질 수 있다는 지적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금서까지는 아니었지만 2002년 출간된 『예수는 신화다』(티모시 프리그·피더 갠디 지음)는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로 이내 절판됐다. 종교가 우리 시대의 권력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처럼 금서는 근·현대사의 격랑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비틀린 모습이다. 사상과 이념, 종교 등 하나의 잣대로만 모든 현상을 규정하려는 우리 사회의 획일화된 구조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금서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고전으로 일컫는 수많은 금서가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그 결과 오늘 우리의 오롯한 삶이 가능했다. 금서는 한 사회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진단하는 척도다. 한국 사회의 나아갈 길을 찾아보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만한 이유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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