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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에게 듣는다 성철 스님 백일법문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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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우 스님이 11일 조계사에서 백일법문 강의를 하고 있다. 당초 150명 규모로 마련됐으나 300여 명이 몰렸다.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 전 서울시장 이상배·우명규씨(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등이 참석했다. [사진 현대불교]

성철(1912∼93) 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백련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과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이사장 엄상호)이 ‘백일법문 강좌’를 마련했다. 그 첫 번째 강좌가 11일 열렸다. 고우(75) 스님이 강사로 나서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 모두 10차례 법문을 들려준다. ‘백일법문’은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사에서 행한 법문이다. 불교의 정수를 담아냈다는 평가다. 이번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고우 스님

“나도 중도(中道)를 스님이 되고 나서 5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젊어서 난 폐결핵을 앓았다. 그 원인을 자꾸 바깥에서 찾았고, 특히 애꿎은 어머니를 원망했다. 하지만 중도를 이해하게 되면서 잘못 산 과거를 후회했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해야 할 어머니를 원망했던 게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1주일 내내 울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정말 불교공부를 잘 했다. 그러자 스스로를 학대하고 구박하던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됐다. 지금 나는 나 스스로를 굉장히 사랑한다.”

 눈썹까지 새하얀 고우 스님이 조곤조곤 고통스러웠던 옛 얘기를 털어놓자 청중에서 박수가 터졌다. 스님 같은 고승도 한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대목에 공감한 것일까.

 11일 저녁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고우 스님의 ‘백일법문’ 강좌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자신이 체득한 불교의 진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겠다는 듯 표정과 눈빛에선 자상함이 넘쳤다. 스님은 특히 비유를 자주 썼다. 미끈미끈 난해한 불교 교리가 손에 만져지는 듯 했다.

 스님은 “중도는 부처님이 발견한 우리의 존재 원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성철 스님 말씀도 결국 중도로 요약된다고 했다. 사람은 ‘나’라는 행위의 주체로 존재하지 않고, 중도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도는 무슨 뜻일까.

 스님은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한 개, 반 개’ 비유를 들었다. 사람은 흔히 손바닥만 보고 손등을 보지 못하는데 손등과 손바닥이 결국 하나의 손을 이룬다는 뜻이다. 여기서 손바닥은 듣고 보는 작용이 몸뚱이에 미치는 세계, 즉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色)’의 세계다. 사람들은 이게 전부인 줄 알지만 손등에는 ‘공(空)’의 세계가 있다는 거다. 해서 둘을 모두 바라봐야 ‘한 개’가 온전하게 보이지 그렇지 못하면 반쪽, 즉 ‘반 개’만 보고 말뿐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손가락 둘’의 비유도 인용했다. 세상의 모든 게 인연에 따라 연결돼 있다는 연기(緣起)의 의미를 설명했다. 손가락 둘을 기울여 삼각형 모양을 만들면 얼핏 삼각형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사람도 무수히 작은 원자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실체가 없이 공하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나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말고 남을 생각하는 중도에 눈을 떠야 한다는 얘기였다.

 생활 속 에피소드도 감칠맛 넘쳤다. 손님을 돈으로만 세던 음식점 주인이 손님을 ‘나에게 돈을 벌어주는 분’으로 여기게 되자 정성을 다하게 되고, 장사도 잘됐다는 얘기였다. 중도는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존중이었다. 그렇게 법문 2시간 반이 금세 지나갔다.

◆고우 스님=한국의 대표적인 선지식(善知識). 봉암사 주지,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 전국선원수조회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불교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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