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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버스서 '웅~' 저주파 소음 장기간 노출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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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파 소음은 귀로는 잘 들리지 않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진=중앙포토]

분당에서 서울까지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하는 임산부 박은영(32·여·경기도 성남시)씨. 지하철 안에서 평소보다 태동이 심하게 느껴져 놀랄 때가 많다. 속이 메스꺼워 멀미 증상도 자주 생긴다. 사람이 밀집된 곳에서 일시적으로 숨쉬기가 힘들어진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원인은 ‘저주파 소음’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원룸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직장인 장미진(35·여)씨. 요즘 방 전체를 감싸는 웅웅거리는 느낌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구청에 의뢰해 소음 측정을 해봤지만 별문제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피스텔 앞에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생긴 이후로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성수 박사는 “장씨는 층간 소음 중 저주파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며 “저주파 소음은 귀로는 잘 들리지 않아 일반 소음 측정 방식으로는 측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통·불면증·만성 스트레스 일으켜

귀로는 잘 들리지 않지만 피부·뇌·장기 등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는 소음이 있다. ‘저주파 소음’이다.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대는 20~2만Hz. 이보다 진동수가 낮은 100Hz 미만이 저주파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소장(정보통신공학과 교수)은 “저주파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주파 소음은 교통 수단에서 자주 발생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성수 박사는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차세대 핵심기술개발사업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에 걸쳐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을 측정했다. 연구에 따르면 지하철(6.3~8Hz에서 95dB), KTX(10~12Hz에서 100dB), 버스(12.5Hz에서 97dB), 승용차(80Hz에서 65dB)에서 저주파 소음이 발생했다. 정 박사는 “KTX·고속버스·지하철에서의 저주파 소음은 몸이 느끼기에는 록밴드 공연 정도의 강한 소음”이라고 말했다. 대중교통에서 쉽게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다.

가정에서도 저주파 소음은 골칫거리다. 대중교통에 비해 크기는 작은 대신 지속적으로 나타나 스트레스를 높인다. 에어컨 실외기는 40Hz에 65dB, 냉장고는 63Hz에서 72dB의 저주파 소음을 뿜어낸다. 특히 층간 소음으로 인한 저주파 소음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다. 배 교수는 “귀로 들을 수 있는 일반 소음은 공기 중에서 쉽게 사라지지만 저주파 소음은 창문을 닫아도 콘크리트나 창문을 통해 멀리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문이나 창문을 통해 2차적인 소음을 발생시킨다.

밀폐된 공간 더 심각···창 자주 열어 환기를

저주파 소음은 장기간에 걸쳐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저주파 소음은 두통·불면증·만성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저주파 소음에 노출된 사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이 증가해 두통·가슴 울렁거림을 호소했다. 배 교수는 “수면 심도가 낮아지고 각성 반응이 발생해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불면증·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둘째, 저주파 소음이 호르몬 계통에 영향을 줘 중추신경의 마비와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정 교수는 “수축기 혈압이 감소해 혈압이 떨어져 호흡을 안정적으로 들이마시거나 내시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눈에 진동이 발생하거나 눈의 깜빡임이 증가하기도 한다. 특히 임산부나 55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증상이 심화될 수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저주파 소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저주파 주파수별 권고 기준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기준이 없다. 저주파 소음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박사는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명 현상으로 저주파 소음이 심화하지 않도록 안방이나 거실 등의 창문을 열어 공기를 순환시킨다. 버스 뒷자리에 앉았다면 창문을 연다. 공연장이나 디스코장 등에서는 우퍼 스피커 바로 앞에 앉지 않는다.

장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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