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그레이스 … 굿바이 박지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29면

박지은이 웨크머스 LPGA 챔피언십 2라운드를 마친 뒤 은퇴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피츠버드=이지연 기자]

“부상으로 너무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아쉽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했던 ‘버디 퀸’ 박지은(33)이 눈물로 정들었던 코스와 작별을 고했다. 박지은은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피츠퍼드의 로커스트힐골프장에서 열린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2라운드를 마친 후 은퇴 기자회견을 했다.

박지은은 “미국에서만 20년 넘게 골프를 했다.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몇 개 대회만 더’라는 생각으로 버텼다”며 “누군가는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 더 잘하지 못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박지은은 박세리(35·KDB산은금융그룹), 김미현(35)과 함께 한국 여자 골프의 1세대 전성기를 이끈 주인공이다. 2000년 LPGA 투어에 데뷔해 2004년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통산 6승을 거뒀다. 2002년과 2003년에는 버디 부문 1위에 오르며 ‘버디 퀸’으로 사랑받았다. 2004년에는 최저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를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5년부터 고관절과 엉덩이 부상이 심해지며 버디 퀸의 면모는 사라져갔다. 2009년 4월 고관절 수술에 이어 2010년 8월 허리 수술을 받으며 침묵이 길어졌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한 올해 LPGA 투어에서의 성적은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7개 대회 중 5개 대회에서 컷 탈락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박지은은 “꼭 부활한 모습을 보여드린 뒤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힘들었다”며 “성적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운동선수로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박지은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당분간 휴식한 뒤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다. 박지은은 지난 해 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드전을 통과해 올 시즌 출전권을 땄지만 국내 코스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올 11월 말에는 8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박지은은 “LPGA 투어를 은퇴한다고 골프계를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다. 좋은 모습으로 다시 팬들 앞에 서겠다”고 했다.

한국 자매들은 박지은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용기있는 결단이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박세리는 “지은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다. 웃으면서 보내주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눈물을 보였다. 최나연(25·SK텔레콤)은 “지은 언니 같은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미국에 쉽게 오고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박지은은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 10오버파로 공동 66위에 올랐다. 지은희(26)는 4언더파를 기록하며 선두로 나섰다. 최종 라운드는 J골프가 11일 오전 3시부터 생중계한다.

피츠퍼드=이지연 기자

◇박지은이 남긴 기록

-LPGA 통산 6승
-LPGA 톱10 58회
-아마추어 통산 55승
-총상금 543만 달러(약 64억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