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몸 불리기 능사 아니다, 리스크 관리 안 되면 사상누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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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22면

금융산업 선진화라는 원대한 비전 속에 지난해 12월 한국형 헤지펀드(hedge fund)가 출범했다. 초창기인 만큼 운용금액이 많지 않고 이렇다 할 수익률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조기 정착과 성장을 위해 진입장벽을 완화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령 수억원에 달하는 개인투자자의 최소 투자 단위를 좀 더 낮춘다든지 하는 식으로 투자 활성화를 하는 방안 등이다.

딜로이트와 함께 하는 헤지펀드의 세계 ②·끝

하지만 헤지펀드의 장기적·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려면 선진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근본 과제다. 시장을 단기 부양하기에 앞서 직간접 규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장기적으로 긴요하다는 이야기다. 정부 주도로 여러 안전장치를 뒀다고 하지만 관련 규제가 아직 부족하다. 규제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시장경제 활성화에 부정적 요인으로 꼽히지만 막대한 민간투자 자금이 오가는 금융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필수불가결하다. 특히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에 대한 규제는 미흡한 편이다. 프라임 브로커란 헤지펀드에 필요한 각종 종합금융서비스를 지원해 주는 투자은행(IB)이나 증권회사를 뜻한다. 규제와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정비되기 전에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재발해 헤지펀드 투자자의 손실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또한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만으로 기관투자가와 해외투자자들의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온전하게 크기 위해 리먼 사태의 교훈을 되살려 본다.

2008년 미국과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금융위기의 중심에는 리먼브러더스와 베어스턴스라는 거대 투자은행의 파산이 자리 잡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과 함께 헤지펀드가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들에게 종합서비스를 제공한 프라임 브로커들도 자연스레 곱지 않은 눈길을 받게 됐다. 미 4대 투자은행의 하나인 리먼은 헤지펀드를 상대하는 대표적 프라임 브로커였다. 수년간의 금융 호황 속에 명망 있는 펀드매니저를 좇아 막대한 자금이 헤지펀드로 몰렸지만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데 주목하지 못했다. 프라임 브로커와 헤지펀드 중 어느 한쪽에서 위험이 발생하면서 다른 편까지 급속히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무신경의 대표적인 사례는 헤지펀드가 맡긴 자산에 재담보를 설정하는 관행이었다. 즉 투자자인 헤지펀드가 담보로 맡긴 주식을 프라임 브로커가 다른 투자자들에게 빌려줘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었다. 문제는 프라임 브로커가 파산할 경우 헤지펀드가 그 주식을 돌려받기 어렵게 된다.

리먼 파산 당시 미국은 헤지펀드를 직접 감독하는 대신 헤지펀드에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 브로커를 통해 간접 규제하고 있었다. 미국은 투자자보호법에 따라 프라임 브로커의 재담보 설정을 제한함으로써 투자자가 자산을 회수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영국은 재담보 설정에 제한을 두지 않아 허점을 노출했다. 실제로 영국 리먼브러더스에 증권과 현금을 맡겨 둔 오크(Oak)그룹의 경우 리먼 파산 후 이를 되찾지 못했다. 이렇듯 규제가 부족하면 프라임 브로커 파산이 헤지펀드 업계뿐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

리먼에 몇 달 앞서 파산한 베어스턴스는 4대 투자은행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헤지펀드 관련 업무가 많았다. 미 정부가 앞장서 베어스턴스에 구제금융을 한 것은 베어스턴스 생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로 인해 위험에 노출된 투자자와 금융시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미 규제 당국인 상·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헤지펀드 직접 규제 제도를 누차 도입하려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헤지펀드에 신용 대출, 증권 대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 브로커를 간접 규제하는 방식으로 헤지펀드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관리해왔다. 금융위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직접 규제 필요성이 부각됐고 그 결과물이 2010년 도입된 도드-프랭크 법안이다. 이 법안이 도입되고 나서야 헤지펀드의 등록이나 기록제출·보고와 같은 직접적 의무사항이 제정됐다. 헤지펀드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록 검사와 감시 또한 강화됐다.

골드먼삭스와 같은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의 경우 수익의 30%가량이 프라임 브로커 업무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임 브로커 산업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헤지펀드 산업의 발전뿐 아니라 투자은행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관련 규제가 필수불가결해지고 있다. 헤지펀드 시장을 키우려는 우리 입장에서도 시급한 과제다.



김용석 뉴욕시립대에서 재무학을 전공한 뒤 미국 금융감독원에서 일했다. 딜로이트 자산운용본부 상무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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