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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7년은 더 간다는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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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02면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은 경솔했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충격” 발언은 해선 안 될 실언(失言)이었다. 말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내 생각도 똑같다. 세계경제가 정상을 되찾는 데 6~7년 걸릴 것 같다. 단지 자신의 위상을 깊이 생각한 후 말해야 했다는 걸 지적하는 거다. 그들은 시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순한 애널리스트가 아니다. 나라경제를 걸머지고 있는 전·현직 장관이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터다. 시장을 살살 달래가면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되레 기름을 끼얹으니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잘 알고 있고, 노련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김영욱의 경제세상

거듭 강조하지만 말은 맞다. 금융 불안 얘기가 아니다. 설령 금융 불안이 빨리 해결된다고 해도 실물경제가 회복하는 데는 그만큼의 기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붕괴되면 회복은 더 늦어진다. 대공황급(級) 충격이 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주목할 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 금리를 0~0.25% 수준으로 유지하는 ‘제로 금리’ 정책을 2014년 말까지로 연장한 배경이다. 지난해 8월 제로금리 정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내년 중반까지였다. 하지만 지난 1월, FRB가 기간을 1년6개월 더 늘렸다. 1월은 미국 경제가 조금씩 기력을 찾아가던 때였다. 실업률이 떨어졌고, 주가도 상승했다. 그런데도 제로금리를 연장하기로 한건 경제가 정상화되려면 그만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한신대 윤소영 교수의 분석이 바로 그렇다. 그는 미국이 향후 매년 4% 성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상적인 경제력을 되찾는 건 2015년이라 전망한다. FRB가 제로금리를 끝내고 정상적인 정책 운용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시점(2015년)과 일치한다. 하지만 미국이 연 4% 성장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연 3% 성장률을 가정하고 회복 시점을 다시 계산한 결과 2019년부터 회복하는 걸로 추정됐다. 앞으로 7년 남았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 등이 말한 ‘대공황급 충격’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가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데도 13년(1929~41년) 걸렸다. 이번 위기 역시 2018년까지 지속된다면 불황 기간은 11년(2008~2018년)이다. 대공황 기간과 거의 똑같다.

이런 시나리오도 유로존이 붕괴되지 않을 경우에 가능하다. 그리스·스페인이 유로존을 탈퇴하면 실물경제가 받는 충격은 더 커지고 미국 경제 회복도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유로존이 붕괴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스페인 경제가 살아나려면 수출을 늘려야 한다. 긴축정책으로 내수가 가라앉으면 그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리스·스페인은 다르다. 제조업은 빈약하고 관광·서비스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수출 증대를 기대하기 힘들다. 유럽이 정상적인 경제력을 되찾으려면 재정통합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도 가까운 시일 내는 안 된다. 독일은 물주(物主) 노릇을 하게 될까 봐, 다른 나라들은 전범(戰犯)국가인 독일에 종속될까 봐 각기 반대한다. 하긴 유로본드 하나 해결 못 하는 마당에 재정통합이라니! 미국도 화폐 통합 후 재정을 통합하는 데 100년 걸렸다. 화폐는 1776년 독립전쟁 이후, 재정은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통합했다. 재정통합은 그만큼 어렵다.

그러니 우리가 큰일이다. 무역의존도 110%에 경제 흐름이 글로벌 경제와 똑같이 진행되는 나라다. 전 세계가 경제위기 극복에 6~7년 걸린다면 우리도 저(低)성장, 오래 겪을 거다. 각오 단단히 해야지 싶다. 만일 유로존이 붕괴되면 외환위기, 금융위기는 자동 추가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도자란 사람들은 모두 대선에만 정신 팔려 있을 뿐 주저앉는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으니. 나라야 망하든 말든 대통령만 되면 된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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