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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줄기 송송 양념 적당~히 쓱쓱 무순 얹어내면 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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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24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고 간판에 써 놓은 식당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문구가 재미있어서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기왕에 맛있다고 주장할 거면 첫 번째로 맛있다고 하지 왜 두 번째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은 사람들 자신의 집이란다. 누구나 자기 집에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밖에서 먹는 음식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밖에서 먹는 음식 중에선 자기들이 가장 맛있게 잘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음식 맛은 동의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참 센스 있게 만든 광고 문구여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4> 묵은지 비빔국수

집에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얘기는 옳은 얘기다. 아무리 유명하고 맛있다는 고급 식당을 목숨 걸고 찾아다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야”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미각의 기준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자라오고 생활해 오면서 주로 먹어왔던 음식, 즉 집에서 먹어왔던 음식을 기준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에 그렇다. 음식을 먹으면서 만족하는 데에는 맛 이외에도 정서적인 안정감과 친밀감도 포함돼 있다.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어느 곳에서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으니 저절로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해 보면서 밖에서만 요리를 배워올 생각을 했었지 집에서 먹는 음식을 배워볼 생각을 못했었다.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될 텐데 역시 항상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못 느끼나 보다.

요즘 같은 계절에 우리 집에서 별미로 자주 만들어 먹는 것 중에 비빔국수가 있다. 원래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잘 만들어 주셨었는데 이제는 집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아주 맛있는 비빔국수를 만든다. 만드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집에 있는 재료들로 쉽게 만들 수 있다. 이걸 한번 배워서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리 집의 비빔국수는 묵은지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해 겨울에 김장을 담글 때 별도로 묵은지용으로 김치를 담가 놓은 것이다. 초여름이 시작되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입맛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이 묵은지를 꺼내 여러 음식에 사용한다. 잘 숙성된 묵은지의 깊은 맛은 비빔국수를 아주 풍부한 맛으로 만들어 준다.

집사람의 지도편달[아무래도 편달(鞭撻·채찍질]의 느낌이 더 강한 잔소리와 핀잔 포함)로 묵은지를 이용한 비빔국수 만드는 과정을 시작했다. 우선 재료를 준비했다. 국수, 국수를 비빌 양념, 묵은지, 오이, 계란 지단, 무순 등이다. 국수로는 우리 집에서는 주로 수연(手延) 소면을 이용한다. 손으로(手) 늘여서(延) 만드는 소면이다. 수연 소면은 쫄깃한 맛이 특징이다. 잘 불지도 않는다. 일반 소면은 밀가루 반죽을 구멍이 뚫린 성형 틀에 넣고 뽑아내지만 수연 소면은 밀가루 반죽을 잘 숙성시킨 다음에 잡아당겨 만들기 때문이란다. 짜장면의 수타면과 비슷한 컨셉트다.국수를 비비는 양념은 고추장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간장, 설탕, 깨소금, 참기름을 섞어서 만든다. 집사람의 레시피에 의하면 고추장에 이 다른 양념들을 ‘적당히’ 섞는단다. 집에서 만드는 음식의 맛은 모두 ‘손맛’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손맛은 ‘적당히’가 특징인 맛이다. 예부터 새 며느리가 들어와서 이 ‘적당히’라는 감각을 익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집안의 음식 수업은 끝이 났다.아무튼 어려운 경지임에 틀림이 없는데, 나는 입을 고생시키는 걸로 때우기로 했다. 일단 고추장에 간장과 다른 양념들을 조금씩 섞어가며 계속 맛을 보면서 이 맛이다 싶을 때까지 섞어 보았다. 손맛 좋은 어머니의 유전자 때문인지, 집사람의 편달 때문인지 다행히 생각보다는 오래 걸리지 않아 뱃속에 불이 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양념 맛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묵은지를 꺼내서 준비를 했다. 비빔국수에 사용하는 묵은지는 잎새 부분이 아니라 줄기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핀잔꾼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줄기 부분을 사용해야 사각사각 씹히면서 깊은 맛이 더 느껴진단다. 그동안 비빔국수를 자주 먹어 오면서도 주목하지 못했던 세심한 부분이다. 핀잔쟁이가 슬슬 고수로 바뀌어 보이기 시작했다. 찍소리 안 하고 묵은지 줄기 부분만을 잘라내서 먹기 좋게 잘게 준비를 했다. 오이를 얇게 채 썰고 계란 지단을 부쳐 잘라 놓으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재료 준비는 모두 끝났고 비빔국수를 만드는 과정이다. 먼저 국수를 삶았다. 물을 뜨겁게 끓인 다음 국수를 집어넣고 2~3분가량 ‘적당히’ 삶았다. 너무 풀어지지 않고 쫄깃하게 삶아야 하는데 국수의 양에 따라 삶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감으로 맞추는 수밖에 없다. 삶으면서 젓가락으로 국수를 몇 가닥씩 꺼내서 먹어보는 것으로 타이밍을 맞췄다. 국수를 삶고 나서는 건져내서 찬물에 헹궈 식힌 다음에 체에 받쳐서 물기를 뺐다.
물기가 빠진 국수를 양념과 묵은지, 오이를 함께 넣고 손으로 골고루 비볐다. 잘 비벼진 국수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계란 지단과 무순을 얹으니 비빔국수가 모두 완성됐다. 이렇게 만든 비빔국수의 맛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새콤, 달콤, 매콤 삼총사다. 묵은 김치 줄기 부분이 아삭거리며 씹히는 느낌이 우선 좋고, 숙성된 깊은 김치 맛이 소면의 부드러운 밀가루 맛과 잘 어우러진다. 매운맛으로 텁텁해지는 입맛은 오이가 상큼하게 보완해 준다. 무순의 쌉쌀한 맛이 매운맛을 더 꽉 차게 만들어줬다. 좀 맵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둘러앉아 땀을 흘리면서 한 그릇을 뚝딱 비우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같이 활력이 생긴 느낌이다.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의 음식을 하나 배웠다. 역시 맛있다.

재료
수연 소면, 묵은지, 고추장, 간장, 설탕, 깨소금, 참기름, 오이, 계란, 무순

준비
1 수연(手延) 소면: 밀가루를 반죽해서 숙성시킨 다음에 늘려서 만드는 소면이다. 옛날에는 손으로 늘렸으나 요즘은 기계로 늘린다고 한다. 그냥 성형 틀에 넣고 뽑아내는 일반 소면과 달리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대형마트에 가면 살 수 있다. 일반 소면보다는 값이 세 배 정도 비싸다. 수연 소면이 없으면 일반 소면을 사용해도 된다.
2 비빔국수 양념: 고추장을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간장, 설탕, 깨소금, 참기름을 ‘적당히’ 섞어서 만든다. 섞어가며 맛을 보면서 적당한 맛의 배합을 찾는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3 묵은지는 잎새 부분을 제거하고 줄기 부분만을 잘게 잘라 사용한다. 맛이 더 깔끔해지고 사각사각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4 계란 지단을 부쳐서 적당히 잘라 준비한다. 지단은 흰자를 빼고 노른자로만 부치면 색깔이 더 선명해서 먹음직스럽다.
5 오이는 지단과 비슷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씨 부분을 사용 하지 않으면 씹히는 맛이 더 좋다.
6 무순은 어느 마트에서나 쉽게 살 수 있다. 쌉쌀한 맛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7 국수 삶기: 물을 펄펄 끓인 다음에 국수를 집어넣고 삶는다. 2~3분 정도면 되는데, 너무 풀어지지 않고 쫄깃한 상태로 삶는 것이 관건이다. 삶으면서 젓가락으로 몇 가닥씩 건져 먹어보면서 타이밍을 결정하면 된다. 삶은 다음에는 체를 이용해 바로 건져내서 찬물이 담긴 그릇에 넣고 손으로 잡아서 헹군다. 어느 정도 식으면 바로 건져서 체에 받쳐놓고 물기를 뺀다.

주영욱씨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중 사진, 여행, 음식을 진지하게 좋아한다. 마케팅리서치 회사 마크로밀코리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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