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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없는 정부, 중국 역사왜곡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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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국 랴오닝성 랴오양의 백암산성은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양원왕이 547년에 개축했다고 나오는 대표적 고구려 성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의 길이를 2009년 발표 때보다 두 배 이상 늘려 발표하면서 고구려 성까지 포함시켜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다. [김경빈 기자]

중국이 만리장성으로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나섰다. 중국 국가문물국(한국의 문화재청에 해당)은 5일 만리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18㎞라고 공식 발표했다. 2009년 발표(8851.8㎞)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문제는 만리장성이 고구려·발해 영토인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까지 연결돼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중국의 이런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2002년부터 사회과학원 주도로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국가 무형문화유산에 옌볜 조선족자치주 ‘아리랑’을 포함시키고, 관영 CC-TV 다큐멘터리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말)에서 발해를 당나라 지방정부로 규정하는 등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역사 왜곡 작업을 벌여왔다.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수년째 판박이다. 중국 정부가 역사 왜곡을 공식 발표하고→‘바로잡아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한국 정부가 중국에 유감을 표시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중국은 역사 날조의 달인’(ID kck****) ‘정부는 뭐하고 있나’(ID wjs****)란 비난이 쏟아졌다. 외교부에선 “발표 결과를 철저히 검토해 대응하겠다”며 원론적인 대응에 나섰다.

 ◆‘동북공정’ 전제부터 의문 제기해야=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렇다 할 대응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중국이 만든 ‘싸움의 틀’에 끌려다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성제 동북아연구재단 연구위원은 “중국이 동북공정 논리를 반복하는 것은 ‘현재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사’란 기본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고구려·발해 역사는 한국사’란 식으로 건건이 역사적 근거를 들고 대응해봤자 중국에선 꿈쩍도 안 한다. 동북공정의 기본 전제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 연구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한규 서강대(사학) 교수는 “중국 사학계는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사 연구가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연구 결과가 정치적 문제보다 우선인 한국과 다르다 ”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규철 경성대(사학) 교수는 “중국의 정치 논리에 민간이 역사 논리로 대응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동북공정=‘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공정)’의 줄임말. 2002년 2월 중국 사회과학원 주도로 시작했다.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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