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 연 그 벌교 보성여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태백산맥』의 무대인 보성여관 복원 현장을 찾은 영화감독 임권택, 소설가 조정래, 화가 이종상, 건축가 김원씨(오른쪽부터).

“여기가 깡패들이 회의하던 다다미방인데 죽 누우면 50명은 잘 수 있겠네. 저 끝이 대장 자리니까 임(권택) 감독님께서 앉아보시죠. (웃음) 여기가 요즘 말로 하면 별 다섯 개 호텔이야.”

 7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보성여관. 이곳을 찾은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농을 쳤다. 소설 속에서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쓰던 ‘남도여관’이 바로 이곳이라서다. 소설에는 “그가 벌교에 열흘 정도 머무는 동안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는 구절(4권 43쪽)이 등장한다.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7일 오후 2시 복원공사를 마친 보성여관을 일반에 공개했다. 조정래 작가, 영화 ‘태백산맥’의 임권택 감독, 태백산맥 문학관을 설계한 김원 건축가, 문학관에 자연석 벽화를 만든 이종상 화백 등 ‘태백산맥 4인방’을 비롯해 김찬 문화재청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단장한 보성여관을 보는 ‘태백산맥 4인방’의 소회는 남달랐다.

 임권택 감독은 “1994년께 영화 촬영을 위해 이 일대에서 길게 체류했는데 그때는 완전히 폐허였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복원돼 무척 놀랍고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정래 작가에겐 보성여관의 옛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시절(1953~55년)을 보내며 매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여관 뒷마당에 그대로 있는 석류나무를 보고 감회에 젖은 듯 오래도록 쳐다보기도 했다.

 조씨는 “소설 『아리랑』을 쓰려고 중국에 갔을 때 일제시대 건물이 모두 남아있어서 놀랐었다. 중국 인민의 피와 땀이니 절대로 없애지 말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총독부 건물 등을 다 없애는 한심한 짓을 했다. 보성여관을 시작으로 이런 크고 작은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성여관은 1935년 건립됐다. 한옥의 특징과 일식이 혼합된 양식이다. 2층짜리 일식 목조 1동과 한식 벽돌조 1동으로 구성됐다. 상가 등으로 사용되다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제132호)로 지정됐다. 근대사·생활사적 가치가 있어서다.

 2008년 문화재청이 사들여 문화유산국민신탁을 관리단체로 지정, 2009년 말부터 2년 여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이날 재개관했다. 1층은 보성여관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공간과 카페로, 2층은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졌다. 한옥은 숙박 체험장으로 조성돼 올 하반기부터 손님을 맞는다.

  김원 건축가는 “건물들은 바뀌었지만 여관 앞 거리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문학관도 가깝다. 이 거리를 제대로 살려 ‘태백산맥 문학의 길’ 등으로 살려낸다면 더욱 뜻 깊을 것 같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