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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빠·형아~ 현충원 묘비 앞 부치지 못한 편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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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02년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한 해군의 연인이 남긴 쪽지. 신랑·신부 모양의 나무 인형과 함께 있었다.

“여보, 딸이 결혼식을 올렸어요. 당신의 빈자리를 시아주버니에게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 부모석을 지키니 무척 슬펐습니다. 제가 한눈 팔지 않고 잘 키운 딸아이가 건실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2001년 5월 대전국립현충원에 묻힌 육군 헬기 조종사 고(故) 전홍엽 준위에게 아내가)

고 이기호 육군 중위에게 제자가 보낸 편지. 묘비에는 유족이 아닌 지인의 애틋한 편지도 눈에 띈다.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 순국선열, 순직한 군인·공무원·경찰관 등이 묻힌다. 때때로 이곳의 묘비는 떠나간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게시판이 되기도 한다. 가장을 잃은 아내와 자녀, 아들을 잃은 노부모가 먼저 간 혈육을 그리워하며 갖가지 사연이 담긴 편지나 쪽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10년째 묘비 앞 ‘부쳐지지 않은 편지’의 사연을 모으는 이가 있다. 공주대 김덕수(52·사회교육) 교수다. 김 교수는 5일 기자와 만나 “남 위해 희생하는 데 익숙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자유의 소중함과 나라 사랑의 의미를 전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2001년 산화한 헬기 조종사 고 전홍엽 준위에게 아내가 쓴 편지. 딸을 결혼시키며 쓴 글이다.

10년 동안 김 교수가 모은 사연은 20여 개. 김 교수는 “한 달에 수차례씩 현충원을 들르는데 묘비 앞에서 편지를 발견하는 건 큰 행운”이라며 “대부분의 유족은 편지를 잠시 묘비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가져간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들이 묘비 앞에 놓고 간 편지·쪽지의 내용을 사진 파일로 보관하고 있다.

 김 교수가 모은 유족들의 글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절절함이 녹아 있었다.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 한편에는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가족에 대한 자부심도 묻어 있었다. 2006년 5월 비행 중 추락해 산화한 김도현 소령의 묘비에서는 “하늘을 볼 때마다 너를 그리워할 것 같다. 부디 드넓은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비행하며 편히 쉬기를.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굽어 살펴주길! 다음에 그곳에서 재회할 때는 이렇게 헤어지지 말자.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발견됐다. 공군 동료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었다. 2002년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한 군인의 묘비 앞에는 신랑·신부 모양의 나무 인형과 함께 “○○야, 사랑했어.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쪽지가 있었다고 한다.

김덕수 교수

 올해 들어 김 교수는 수집공간을 넓혔다. 현충원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사연을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김 교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당시 교장이었던 김용홍 장군으로부터 부자 파일럿인 고(故) 박명렬 소령(공사 26기)과 고 박인철 대위(공사 52기)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임무 도중 사고로 순직했다. 김 장군은 김 교수에게 "박 대위를 말리지 못한 죄가 있어 아직도 박 소령의 어머니를 뵙지 못한다”며 “임무 도중 순직한 조종사에 관한 책을 쓴다면 발벗고 돕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현충원에서 모은 사연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낼 계획이다. 우선 최근 5년 새 20명이 넘을 정도로 잇따라 사고로 순직하고 있는 공군 조종사의 사연부터 책으로 내고, 이후 해군·육군·해병대 등의 이야기도 써나가기로 했다. 김 교수는 “해마다 6월에만 반짝 호국영령에 관심을 갖는 세태가 안타깝다”며 “일부 젊은이들이 현충원을 냉전시대 수구꼴통 집단의 혼령이 묻힌 곳이라 매도할 때면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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