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수길 칼럼

현충일, 국립묘지 순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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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수길
주필

대한민국에는 국립 묘역이 여덟 곳 있다.

 서울현충원, 4·19민주묘지, 대전현충원, 5·18민주묘지, 영천호국원, 임실호국원, 3·15민주묘지, 이천호국원 등이다.

 이 순서는 가갸거겨는 물론 아니고 안장된 사람들의 살아생전 지위 고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묘역이 조성된 순서다. 그 순서에 따라 6·25 한국전쟁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 60여 년을 살아온 각 세대의 곡절들이 차례차례 겹쳐 누워 있다.

 오늘 날씨 좋은 현충일을 맞아 편안한 나들이도 좋지만, 잠시 이 글을 따라 국립묘지 ‘순례 길’에 나서보자. 참, 편하지 않은 ‘순례 글’이다. 역사적 사건과 연도별 기록을 더듬어야 하므로.

 서울 동작구에 있는 서울현충원은 애초 6·25 세대의 무덤으로 조성됐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전사자들을 모실 ‘국군묘지’를 1952년부터 찾기 시작해 1953년 휴전 직후 이승만 대통령 재가를 받아 지금의 터를 잡았다. 1956년 1월 16일 처음 안장한 사람들은 무명 용사들이었다. 국군묘지가 최초의 국립묘지로 승격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5년이었고 이때부터 애국지사·경찰관·향토예비군도 안장할 수 있게 됐다.

 4·19민주묘지는 애초 공원묘지로 박정희 정권 초인 1963년 준공됐다. 4·19 의거 후 3년 만이다. 4·19 직후 5·16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서울 강북구에 4·19 기념탑까지 세웠으나 국립묘지 ‘예우’는 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관리하던 공원묘지가 국립묘지가 된 것은 군사정권이 끝난 김영삼 대통령 때였다. 1993년 정부는 묘지의 ‘성역화’ 사업을 시작해 1995년부터 국가보훈처가 관리하기 시작했고 1997년 국립4·19묘지 규정을 만들었다. 여기에 다시 ‘민주’를 붙여 지금의 정식 명칭인 국립4·19민주묘지가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6년이었다.

 5·18민주묘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17년이 지난 1997년에야 조성됐다. 역시 군사정권이 끝나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 ‘특별담화’로 묘역 조성을 발표한 후 4년 만에 완공했다. 그러나 국립묘지로 승격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때인 2002년이었다. 그리고 역시 노무현 대통령 때 ‘민주’묘지가 됐다.

 장기복무 제대군인 등을 위한 국립호국원이 2001년 경북 영천에 처음 개원한 후 2002년 전북 임실, 2008년 경기도 이천에 차례로 세워지는 동안 2003년에는 경남 창원시에 3·15민주묘지가 준공됐다. 1960년 마산 3·15 의거 후 43년 만이다. 4·19를 촉발한 3·15였으나 오랫동안 예우를 못 받다가 4·19 묘지의 승격에 따라 뒤이어 승격했다.

 짧은 국립묘지 순례에도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그 하나. 어릴 적 국군묘지로 가던 소풍이 새삼 기억나는 세대가 있고, 6·25는 둘째 치고 4·19가 뭐예요 하는 세대가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5·18로 인해 세상과 국가·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고히 자리 잡은 세대가 있고, 그 훨씬 뒤에는 5·18이 무언지 요샛말로 개념 없는 세대가 따라온다. 겨우 60여 년 세월에 드리워진 이같은 세대 간 망각과 단층은 앞으로 어찌 작용할까.

 그 둘. 이승만-국군묘지, 박정희-국립묘지, 김영삼-4·19국립묘지, 김대중-5·18국립묘지, 노무현-국립 ‘민주’묘지. 국립묘지가 여덟 곳인 나라는 거의 없다. 많다고 나쁠 것은 없다. 유난할 뿐인데, 국립묘지가 세 범주로 나뉘는 것 또한 유난하다. 현충원·민주묘지·호국원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진압 경찰·군인은 현충원에 묻혀 있고, 2010년 작고한 리영희 교수는 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 셋. 오늘도 각 당 대표부는 정부의 현충원 참배 행사에 참여한다. 각 당은 현충일에 현충원 참배를 거른 적이 없다. 다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도 이합집산을 거듭한 정당들이라 뭉뚱그려 호국영령 앞에 참배한다 해도, 요즘 종북 논란에 휩싸여 갈등 중인 통합진보당은 어느 호국영령 앞에 참배하는 것일까. 그것도 현충원에서.

 그 넷.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나들이를 간다. 아니면 쉰다. 현충일은 그저 휴일일 뿐이다. 국립묘지가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시위도 오늘은 좀 한가하다. 중요한 것은 여가다. 오늘의 여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저기 국립묘지에 묻힌 사연들의 축적이다.

 그 다섯. 앞으로 시민사회와 국가, 국가와 시민사회는? 그래서 올 연말 대선은? 장차 국립묘지는?

김수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