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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헌법에 핵 보유국 명시한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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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헌법에 스스로 핵 보유국이라고 명시했다. 가면을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던 한반도 비핵화를 전면부정하고 핵 보유를 공식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개방과 개혁의 넓은 길을 버리고 고립과 폐쇄의 좁은 길을 택한 북한의 선택은 두고두고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다. 당장 6자회담 무용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에 맞춰 지난 4월 13일 개정된 북한 헌법 서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을 열거하면서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 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轉變)시켰다”고 적시했다. 1945년 제정된 이후 그동안 6차례에 걸쳐 헌법이 수정됐지만 핵 보유국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핵무기를 대외전략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고 볼 수 있다. 6자회담을 핵군축 회담으로 변질시켜 사실상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동시에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변화를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서 핵 보유가 인정된 국가는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5개국뿐이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NPT 체제 밖에서 핵 개발에 성공해 사실상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이들 세 나라처럼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몽상(夢想)이다. 북한이 헌법에 핵 보유국이라고 명시한 것과 관련, 미 국무부는 “우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오랜 기간 유지해 왔다”면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한 2005년 9·19 공동선언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못 박았다.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면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를 막기 어렵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 보유는 비확산 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 미국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고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한의 핵 폐기도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로선 북한 핵을 실체적 위협으로 느끼며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정권 교체만이 유일한 해법이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북한의 핵 보유 주장은 외로운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에 불과하다. 국제사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해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의 역할이다. 중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