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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저축은행 사태, 금융당국 책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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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욱
논설위원

고관(高官),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아무나라니! 턱도 없는 소리다. 그 감투를 쓰거나 유지하려면 갖춰야 할 게 참 많다. 웃어른의 심기를 결코 거슬러선 안 된다는 건 그중 하나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를 보면서 하나 더 추가돼야지 싶다. 바로 ‘무책임’이다. 책임져야 하는데도 모른 척하는 행태다.

 얼마 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 역시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었다. 지난해 퇴출된 저축은행 판박이다. 가짜 회사와 차명계좌를 활용한 불법대출, 교차 증자에 이자 대납 같은 분식회계, 골프장·상가 등의 차명 소유 등등. 심지어 수기(手記)통장까지 나왔다. 1983년 명성그룹 김철호 사건 때 ‘손으로 예금액을 쓰는 통장’이 등장한 이래 30년 만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운운하던 금융당국의 다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금융감독시스템은 30년 동안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서다. 더욱 기막힌 건 저축은행 오너들이 전과자라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주인인 은행에 예금하고 투자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가게가 망할 때까지 감독당국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가.

 사태가 이쯤 되면 금융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수수방관하거나 조장한 잘못이 있는데도 그들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감독 실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틈만 나면 저축은행을 검사했던 그들이다. 전수(全數)조사도 여러 번이었고 현장 조사까지 했다. 지난해 저축은행을 무더기 퇴출시킨 경험도 두 차례 있다. 그런데도 오너들의 ‘막장 행태’를 몰랐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 거다. 스스로 ‘우리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라고 고백한 꼴이다. 몰랐다는 게 면책 사유가 될 순 없다. 그런 조직은 존립할 가치가 없다. 해체하든지 환골탈태해야 한다. 만일 비리를 알았는데도 모른 척했다면 더 큰 문제다. 오너들과 공범이란 의미다.

 그나마 오너들이 파렴치범이라는 건 알았단다. 그러나 과거에 저지른 일이라 현행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난해 5월 저축은행의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면서 “문제점이 발견된 대주주는 바로 퇴출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호언하지나 말든지. 최소한 공시라도 하고 감독을 강화해야 했다. 예금자와 투자자는 오너들이 전과자라는 걸 알 권리가 있고, 그들로부터 보호받을 의무가 있다.

 금융위원회 잘못도 크다. 오너들이 도둑질을 더 많이, 더 오래 할 시간을 줬다. 늦어도 지난해 9월 2차 구조조정 때 같이 정리해야 했다. 재기(再起)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지만 파렴치범에게 호의를 베풀 이유는 전혀 없기에 하는 말이다. 시장에 충격을 덜 주기 위해서라는 변명도 석연치 않다. 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해서란 얘기인데, 우리 경제시스템이 저축은행 몇 개 더 정리한다고 위험에 빠질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는 건 금융위 자신도 잘 알 거다. 그런데도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9월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긴 대장정이 거의 끝났다”고 장담하면서 그런 자신들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자찬했다.

 문제가 생기면 제때 풀어야 한다. 부실 역시 단칼에 도려내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그러긴커녕 질질 끌었다. 그러는 새 ‘상시 구조조정’ 원칙도 사라졌다. 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도 마찬가지다. 금융위는 PF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3년 기한으로 넘겼다. 문 닫는 저축은행이 속출할 위험이 있다면서. 하지만 결과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저축은행 위험은 여전하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는 바람에 PF 가치는 더 떨어졌을 거다. 내년 말부터 이 채권이 저축은행에 되돌아오면 그때쯤 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불지 싶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정산하고 정리하지 않은 탓이다. 하기야 내년 말이면 이 정부는 없다. 김 위원장도 그럴 거다.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다음 정권이 폭탄을 떠안았다.

 사정이 이렇다면 금융위와 금감원은 책임져야 한다. 기관장인 김 위원장과 권혁세 금감원장, 두 고관이 책임지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을 거다. 저축은행 사태는 아예 정리조차 하지 않은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등 역대 기관장들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게 면책 사유가 될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들 역시 잘못이 많기 때문이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결단 내려야 한다. 최소한 사과는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