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섹스의 내연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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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익명성은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공적인 폭로를 촉진해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프라이버시를 무참하게 짓밟는 폭로도 있다. 권력과 성이 맺는 내연의 관계는 인터넷의 익명성 속에서 더욱 교묘해진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공적인 폭로를 촉진하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개인에 대한 폭로로 남의 사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숨김과 드러냄의 숨바꼭질 속에서 웃고 우는 자간의 희비가 교차한다.

권력과 성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권력과 성은 이상하게도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권력은 음란물을 빌미로 호시탐탐 인터넷에 개입할 근거를 찾았다. 최근 안티 DJ라는 사이트가 음란물 게재를 이유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사례는 권력과 성 사이에 맺어지는 내연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인터넷은 폭로와 드러냄의 매체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권력을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수단인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을 까밝히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2000년 초에 총선연대가 부패 정치인의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이 시민의 참여와 결합할 때 드러나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패한 권력일수록 숨기고 가릴 것이 많은 법이다. 썩어빠진 권력에 대한 폭로는 우리 사회를 맑고 투명하게 바꾸는 원동력이다. 인터넷에서는 공적인 모든 영역이 사회적인 감시와 폭로의 대상이 된다.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뒷거래나 야합이 통하지 않도록 사회 모든 부분에서 네트가 망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처럼 공적이고 사회적인 사실을 폭로하는 데는 익명성의 활용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폭로와 밝힘은 사회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사회를 투명하게 만든다.

공적인 자료와 정보를 공개하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야합이 설 자리가 없다. 걸핏하면 국가 기밀을 내세워 ‘공개 불가’ 판정을 내리는 풍토에서 공권력의 공정함과 국가 경쟁력은 싹틀 수 없다. 이미 다 아는 상식을 기업 비밀이라고 싸잡고 앉아있어서는 혁신과 새로움이 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시대에서 경쟁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공적으로 밝히고 공개하는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보호되어야 할 사적인 정보들이 마구 드러나고 있다. 몰래 카메라와 결합한 인터넷 공개의 위력은 대단하다. 페루의 후지모리는 몰래 카메라 때문에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 인터넷은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을 공개하는 섹스 만화경으로 전락한다.

유명 여가수의 성행위가 담겨있는 동영상 파일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더니 결국 한 가수의 생명에 치명타를 날려버렸다. 대중의 관음증과 인터넷 상업주의가 합작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시궁창에 처박은 사건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러브호텔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지역에서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여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자동차 번호를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여 인터넷에 공개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사건도 있었다. 목적이 정당하면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은 인터넷 시대의 프라이버시를 송두리째 날려버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원조교제를 하다가 발각된 사람의 인적 사항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는 청소년 보호위원회의 야심 찬 계획이다. 광화문 네거리에 참수한 목을 걸어놓겠다는 식이다. 공공 목적을 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짓밟는 잔인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운동 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라는 단체가 성폭력 사례를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터넷은 권력이 공적인 사실을 가리거나 힘으로 할 말을 못하게 할 때 이에 대항하는 아주 유력한 미디어로 활용될 수 있다. 힘 없고 언론에 호소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도 현대판 신문고인 인터넷에 글을 올림으로써 직접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감춰진 비리를 폭로할 수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갈대밭에서 소리친 이발사처럼 권력자의 감춰진 치부를 네트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사생활 폭로와 공적 사실의 공개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무책임한 폭로가 계속되면 곤란하다. 설혹 어떤 폭로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라도 익명성의 보호막 뒤에 숨어서 남의 실명을 거론하는 복면 강도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익명성은 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도구인 동시에 남의 프라이버시를 훼손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가져다 준 익명성의 혜택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남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쉽다. 인터넷에서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못지 않게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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