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새 늘어난 대출의 89%가 고금리 제2금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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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쇼핑몰을 하는 김영기(43)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운영자금을 빌리려다 실패했다. 은행 측은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가 꽉 차 신용대출을 내줘야 하는데 신용 5등급으론 안 된다”고 했다. 급했던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연 20%에 가까운 카드론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은행 대출금리는 한 자릿수인데 제2금융권으로 가니 최소 18%를 달라고 한다”며 “경기가 좋지 않은데 빚을 갚아나갈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신용대출에 주력하는 한 저축은행엔 요즘 5등급 이상의 ‘고신용’ 고객이 부쩍 늘었다. 김씨처럼 은행에서 퇴짜를 맞고 급한 돈을 빌리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저축은행은 전통적으로 6등급 이하의 저신용 고객에게 대출을 내줘왔다. 한 창구 직원은 “금리가 연 30% 이상이라는 말에 놀라면서도 상당수 고객이 대출 신청을 한다”며 “다섯 명 중 한 명은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나이스신용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의 신규 신용대출 6조2000억원 중 32.5%를 5등급 이상이 받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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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의 금리 고통이 커진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최근 2년 새 2%에서 3.25%로 올랐다. 은행들은 ‘안전제일경영’에 치중했다. 우량고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확대에만 신경을 썼다. 하위 중산층과 서민들이 2금융권으로 내몰린 건 당연한 결과다.

 고통이 배가되는 건 그 다음이다. 은행에서 2금융권으로 옮겨가면 대출금리가 급작스레 뛴다. 이른바 ‘금리 단층’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권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6.61%였다. 2금융권 신용대출의 평균 금리는 21.55%다. 중산층·서민이 은행 다음으로 많이 이용하는 카드사 대출금리가 평균 19.3%다. 캐피털은 20%대 중반,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30%대다. 최근 2년 새 늘어난 신용대출(19조5000억원)의 89%를 2금융권 대출이 차지했다.

 2금융권 금리도 징검다리형으로 분포돼 있다. 신용도에 비례해 금리가 오르지 않고 갑작스레 뜀뛰기를 하는 구조다. 조사에 따르면 특히 10%대 초반과 20%대 초반, 30%대 초반의 자금공급이 부족했다. <그래픽 참조> 그나마 10%대 초반 금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은행권 대출은 새희망홀씨와 햇살론 등 비자발적인 정책대출이다. 30%대 초반 대출은 아예 사라지다시피 했다. 지난해 신규 취급액이 채 1조원이 되지 않는다. 이 금리를 부담하고서라도 대출을 받아야 할 고객은 금리가 더 높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김정인 KCB 연구소장은 “자금 수요와 공급이 시장원리로 결정된다면 대출액이 가장 많은 4~6% 구간을 중심으로 대출잔액이 서서히 감소해야 하지만 실제론 징검다리식 금리 구조가 나타난다”며 “가계대출 공급구조가 왜곡돼 금융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구조는 악순환을 부른다. 은행 금리의 세 배를 물면서 ‘금융중산층’으로 복귀하긴 쉽지 않다. 당장의 이자 부담 증가는 저축 감소와 다른 대출의 상환 능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금융권에선 이 과정이 은행 거래 단절→2금융권 고금리 대출 이용→다중 채무→서민정책금융 이용 순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최근 다중채무자와 서민금융 이용액이 동반 급증하는 것은 우려를 키운다. 고금리 대출을 연평균 11%짜리 은행대출로 바꿔주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바꿔드림론은 올 들어 2만2000여 명이 신청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어났다. 이 제도가 시작된 2008년 말 이후 누적 신청자도 최근 10만 명을 돌파했다.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인 사람에게 연 10%대 초반 금리로 빌려주는 은행권의 새희망홀씨 대출도 시작한 지 1년5개월 만인 지난 3월 말 2조원을 돌파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선 창구에서 신용등급이나 거래실적 등을 토대로 대출 희망자를 거르고 있지만 수요가 급증한다”며 “서민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나현철·김혜미 기자

◆금리 단층=금융권에서 대출이 특정 금리대에 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보통 대출 금리가 일정 영역에서 갑자기 다른 영역으로 훌쩍 뛴다. 지난해 말 은행권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6.61%였지만 2금융권 신용대출의 금리는 21.5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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