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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인 줄 알고 상대가 마셨다면 살인죄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마셔!” 지난해 8월 교제 중이던 여성 조모(사망 당시 47세)씨와 심하게 싸우던 이모(51)씨는 갑자기 ‘옥수수수염차’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따랐다. 하얀 사기 그릇에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진한 청록색 액체가 가득 담겼다. 이씨는 액체를 조씨에게 권했고 홧김에 사발을 들고 마신 조씨는 112로 전화해 “크라목션 먹었어요”라며 구조를 요청했다. 조씨가 마신 것은 농약 그라목손인티온이었다. 조씨가 전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계속해 만나자 화가 난 이씨가 농약을 따른 것이었다. 조씨가 일주일 후 사망하자 검찰은 조사 후 이씨를 자살방조·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1, 2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농약을 옥수수수염차로 잘못 알고 마셨다는 조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이씨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조씨가 마신 그라목손인티온은 맹독성 농약으로 역겨운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이를 음료수로 잘못 알고 마셨다는 조씨의 사망 전 진술은 선뜻 믿기 어렵다”며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씨가 ‘이놈 먹고 내가 먼저 죽어버려야겠다’고 말한 점 등으로 볼 때 조씨는 사발에 든 액체가 농약인 것을 알고 마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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