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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이 사실상 승자 … 친노 대권경쟁 조기 점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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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06면

26일 창원에서 열린 민주당 경남 지역 당대표 경선에서 김한길·우상호·이해찬(왼쪽부터) 후보가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창원=송봉근 기자

26일 오후 5시40분 경남 창원의 문성대 체육관. 연단에 선 문병호 민주통합당 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이 당대표 선출을 위한 경남 경선의 개표 결과를 읽어 나갔다. “기호 1번 이해찬 후보 150표, 기호 2번 우상호 후보 79표, 3번 김한길 후보 258표….” 순간 김한길 후보 지지자들에게선 ‘와’ 하는 함성이 튀어 나왔다. 김한길 후보 측에선 “100표가 넘는 표차라면 압승”이라고 기뻐했다.

김한길의 경남 경선 1위에 담긴 뜻

이날 경남 경선에서 겉으로 드러난 승자는 김한길 후보였다. 하지만 투표장의 관심은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영향력에 쏠려 있었다. 경남 경선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대 ‘리틀 노무현’ 김 지사의 대결이란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일찍부터 느껴졌다. 개표 3시간여 전인 오후 2시20분쯤 문성대 체육관엔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분”이란 사회자의 소개 속에 등장한 사람은 김 지사였다. 체육관 입구에 들어서는 그에게 대의원들이 몰려 들었다. 한 아주머니 대의원은 “같이 사진을 찍자”며 팔짱을 끼었고, 한 남성 대의원은 “지사님 정말 좋아합니다. 파이팅 김두관!”을 외쳤다.

축사에 나선 그는 “연말 정권 교체를 위해 사즉생의 각오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원 동지들에게 바치겠다”며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또다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설에 나선 후보들은 김 지사를 거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해찬 후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 지사가 (경남도지사에 당선돼) 엄청난 정치적 업적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김한길 후보는 “각본에 따른 경선은 대선 필패를 불러온다. 어느 후보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 관리로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김 지사를 앞에 놓고 ‘이해찬-박지원 연대’를 우회 비판했다. 추미애 후보는 김두관을 호명하며 “바로 이런 분들이 제2의 노무현 대통령이 될 분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대의원들에게선 ‘이해찬-문재인’ 대 ‘김한길-김두관’의 구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김한길 후보를 찍겠다고 밝힌 대의원 최모(50)씨는 “아무래도 문 상임고문은 김 지사보다 정치 경험이 적지 않는가”라며 “문 고문은 (국회의원 이전) 선출직은 맡아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한 조합으론 서울 국회의원인 김한길 대표, 경남의 김두관 대선 후보가 제일 괜찮아 보인다. 지금 김 지사가 중도에 도지사에서 물러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막상 김 지사가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면 다 (김 지사를) 찍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영에서 왔다는 김모(51)씨는 “김 지사는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 하고 장관 하지 않았나”라며 “역경을 거쳤고 서민을 아니,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당 대표로 누구를 찍을지는 밝히지 않으면서도 “김 지사가 (대선에)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고, 그때 당을 잘 이끌 메이트 역할을 할 사람을 당 대표로 뽑으려 한다”고 전했다.

반면 강모(47·여)씨는 “담합이니 뭐니 하지만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 역시도 문재인 고문을 야권에서 가장 괜찮은 후보로 여기고 있다. 당 대표는 이해찬 후보가 적절하다고 본다”며 “대선 승리를 위해 가장 안정적인 조합”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론’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던 것을 놓고선 “정당에 계파가 있고 또 세를 합치는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김 지사 측은 대리전을 부인했다. 김 지사 측 안관수 정책특보는 “김 지사는 뒤에서 누구를 지원하라 마라 할 분이 아니다”라며 “중립을 유지하는데 언론이 앞서서 대리전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날 축사에서 후보 8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 당에 경쟁과 대립은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고 단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 지사를 돕고 있는 이강철 전 청와대 수석이 대구·경북 경선에서 김한길 후보를 지원하며 대리전 양상은 뚜렷해졌다. 앞서 김 지사는 ‘이해찬-박지원 역할 분담론’이 나왔을 때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반면 문 상임고문은 ‘이-박 역할분담론’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런 탓에 부산에 이어 친노의 거점이자 상징인 경남에서 누가 1위에 오르는지 여부는 향후 민주통합당의 대권 경쟁 구도까지 내다보는 관심거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한길 후보의 경남 승리가 발표되자 당직자들 사이에선 “김 지사 지지층이 결집했다”는 말이 나왔다. 한 지역 인사는 “김 지사를 돕는 분들이 김 지사로부터 ‘오더’를 받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 대표가 누가 되는 게 김 지사에게 유리한지 따져 보고 표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당의 경남도당 관계자는 “경남 경선은 김 지사 지지자들이 향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전을 앞두고 김 지사의 출마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조직을 점검하고 표를 단속해 보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한길 후보의 승리로 친노 진영은 분화됐고 당내 대권 후보 경쟁이 조기 점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남의 야권 지지층은 김한길 후보 선택이란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문 상임고문의 경쟁자로 김 지사를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문 상임고문으로선 물밑에서 지원했던 이해찬 후보의 경남 패배로 타격을 입게 됐다. 부산과 함께 친노의 거점인 경남에서 패배한 만큼 그의 대선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이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당 대표를 놓고는 여전히 이해찬·김한길 두 후보 중 어느 한쪽의 우위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해찬 후보의 1위가 유지되는 데다 수도권, 모바일 선거 등 예측하기 힘든 변수가 남아 있다. 당내에선 향후 충북·전북과 수도권의 대의원 경선을 놓고 이해찬 대 반(反)이해찬 또는 문재인 대 비(非)문재인의 구도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내 핵심 고위 인사는 “문재인 상임고문을 제외한 당내 대선 주자들이 사실상 모두 김한길 후보를 밀고 있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중립 성향의 당내 한 중진 의원은 “이해찬 후보와 연계돼 있는 문 상임고문을 견제하기 위해 손학규 전 대표, 정동영 상임고문 등이 김한길 후보를 측면 지원하며 이해찬-문재인 조합이 둘러싸인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1, 2위 외에 나머지 후보 6명의 중위권 각축전도 치열하다. 1인2표제에서 2순위 표 잡기 싸움이다. 우상호 후보는 “당의 변화를 상징하려면 신선한 얼굴, 젊은 얼굴이 필요하다”며 ‘젊은 간판론’을 내세웠다. 철원 출신인 우 후보는 강원 경선에서 몰표를 기대한다.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한 조정식 후보는 수도권 표심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날 당 대선 후보 선출 때 결선투표제를 제안하며 “경선 1등과 2등이 결선 투표로 최종 승부를 겨루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3위에 오른 이종걸 후보 역시 수도권 표심을 기대한다. 추미애 후보는 TK 출신이면서 유일한 여성 후보란 강점을 부각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강기정 후보는 수도권 내 호남 당원·대의원들의 지원을 파고 들고 있다. 문용식 후보는 정보기술(IT) 벤처 기업가라는 경력을 살려 향후 일반 시민·당원의 모바일 투표에서의 이점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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