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남의 손 거쳐 받은 국군 유해 … 기쁨 아닌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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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정치부문 기자

25일 오전 8시45분. 12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를 실은 공군 C-130 특별수송기의 화물칸이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른손 끝을 오른 눈썹 옆에 붙이며 거수경례를 했다. 군통수권자로서 예우를 갖췄다. 그는 경례 도중 눈동자도 돌리지 않고 한 곳을 응시했다.

 6·25전쟁 뒤 처음으로 북한에 묻혀 있던 유해가 봉환되는 그 장면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챙겨야 하겠다는 다짐 아니었을까.

 우리의 국격(國格)은 6·25 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올림픽·월드컵은 물론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 이어 지난 3월엔 핵안보 정상회의를 주관했다.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했다.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원조와 파병도 늘리고 있다. 안에서는 우리끼리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밖에서 보는 우리의 국격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그런데 아직도 그 격에 맞지 않게 해묵은 숙제를 떠안고 있다.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유해 발굴이다. 당시 유해를 찾지 못한 국군 전사자는 1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3만~4만 명의 유해는 비무장지대나 북한에 있다. 우리나라에 묻혀 있는 유해도 2000년부터 6600여 구를 발굴했을 뿐이다. 전체의 5% 수준이다.

 남북은 2007년 11월 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유해 발굴은 군사적 신뢰 조성 및 전쟁 종식과 관련된 문제”라고 합의했다. 이 대통령도 2010년 1월 국정연설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 뒤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남의 손을 거쳐 받아야만 하는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 봉환식이 기쁨이 아닌 반성의 시작이 돼야 하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새벽 4시 만사를 제치고 미군 전사자 유해를 맞이하러 공항으로 뛰어나간 적이 있다. 최고 통수권자의 그런 모습에 국민은 조국에 충성을 바치는 거다. 요즘 우리 내부에선 일부 정치인이 뒤틀린 국가관을 태연히 입에 올리고 있다. 심지어 “현충원에 대한 참배 권유는 부당한 강요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공당(公黨)에서 나올 정도다.

 그뿐인가. 25일 봉환식을 생방송한 지상파 TV는 한 곳도 없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공정방송, 공영방송을 외치면서 케이블TV가 봉환식을 생중계하는 동안 드라마와 토크쇼를 내보냈다. 어제가 없이 오늘이 있을 수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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