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워치] ‘5월 쇼크’로 다시 확인한 장기 불황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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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5월이 또 하나의 깊은 상처를 남기고 저물어간다. 주식 투자자들은 올 들어 4월까지 어렵게 쌓아올린 수익을 눈깜짝할 사이에 반납했다.

 코스피지수가 한때 2000을 회복하자 낙관론이 다시 판을 쳤다. 하반기에는 2200을 거뜬히 넘을 것이란 예측이 확산됐다. 삼성전자가 200만원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5월은 시장의 허황된 기대를 꾸짖는 듯했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의 사장은 고객을 오도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반성문을 발표했을 정도다.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5월이 남긴 교훈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첫째, 거시 경제의 회복 기대감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접어둬야 할 것 같다. 유럽연합(EU)이 지난해 12월 신재정협약에 합의하고, 미국의 고용·소비·주택 등 지표가 1분기 들어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자 시장은 반색했었다. 경기가 바닥을 지나고 있으며, 하반기부터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일장춘몽’이었다. 최근 글로벌 경제는 장기 불황의 심연으로 자꾸만 빨려들어가는 허약함을 드러냈다.

 유럽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글로벌 경제가 살아나기 힘들 것이란 사실이 재확인됐다. EU가 올 들어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가면서 이곳을 최대 수출시장으로 하는 중국을 강하게 때렸다. 중국은 뒤이어 자기 나라에 소재와 부품·원자재를 공급하는 국가들을 때렸다. 한국과 브라질·호주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사정이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자기 몸 추스르기도 벅찬 처지다. 안타까운 것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답이 있는데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현실이다. 부국와 빈국, 채권자와 채무자 등 사이에 이해관계가 뒤얽혀 “내가 손해 볼 순 없다”는 다툼만 거듭하고 있다. 지난 23일 EU 정상들이 비공식 회담을 했지만 긴축 완화나 유로 공동채권 발행 등의 어떤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둘째, 이 와중에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과도한 무역 의존도를 반영해 원화가치가 1180원대까지 급락했다. 5월 중 통화가치 하락폭은 원화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900조원 가계부채의 파괴력도 경제 구석구석으로 파급되는 모습이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급기야 마이너스로 들어섰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하고는 순익이 줄어드는 기업이 대다수인 가운데 기업 투자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셋째, 장기 투자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8월에 이어 또 경험했듯이 상시 위기의 시대엔 어떤 자산이든 가격이 좀 오르는가 싶다가도 이내 주저앉기 일쑤다. 물론 2008년 리먼 사태 때와 같은 극도의 불확실성과 침체는 없을 것이다. 시장이 붕괴할 조짐을 보이면 역설적으로 글로벌 공조 체제가 쉽게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래 묻어두면 언젠가는 오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버리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는 얘기다. 기대 수익을 낮추고 시장의 공포와 흥분을 역으로 이용해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고는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이 꽤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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