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과 지식] 늘 다니던 길 벗어나라, 그래야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벨연구소 이야기
존 거트너 지음
정향 옮김, 살림Biz
488쪽, 2만5000원

제목 그대로 벨연구소를 다룬 책이다. 들어본 것도 같은데 뭐 하는 연구소인지 모르는 이가 많다. 벨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민간과학기술연구소다. 1925년 미국 전화회사 AT&T가 세계 처음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세웠다. 설립 이래 취득한 특허만 3만3000개. 노벨상 수상자만 13명이 나왔다. 트랜지스터, 전화교환기, 광통신, 휴대전화, 통신위성, 디지털 카메라 분야의 핵심 기술이 모두 이 연구소의 발명품이다.

 책은 그 성과의 비결을 추적한다. 연구소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에서 답이 나온다. 저자는 “벨 연구소의 성공은 한 천재의 힘이 아니다”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내는 과학자와 그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엔지니어의 힘을 하나로 모았다.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차별하지 않았다. 재능과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섞었다. 과학자가 아이디어를 내 발명하면 엔지니어는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었다. 그게 문화로 뿌리내렸다. 융합과 역할분담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물 안에 200m가 넘는 복도를 둬 여러 사람이 마주칠 수 있게 했다.

 벨연구소를 이끌었던 머빈 켈리나 존 피어스 등은 독특한 관리철학을 정립했다. 일회용 성과가 아닌 지속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생산과정을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흔해 빠진 성과급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성과급을 받으려면 빨리 개발해야 한다. 빠른 개발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전시킬 때 가능하다.

 벨연구소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연구자를 전폭 지원했다.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라. 전에 못 본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다.” 묘비에 새겨 넣었다는 그레이엄 벨의 말을 연구소가 그대로 계승했다.

 과학·기술 용어가 많이 등장하지만 어려울 게 없다. 친절한 풀이가 따라붙는다. 이 연구소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다. 98년 달러 한푼이 아쉽던 외환·금융위기 때 한국에 투자했던 한국계 김종훈씨가 2005년 최연소 사장, 최초의 외부인 사장, 최초의 동양인 사장으로 취임한 곳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