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컬렉션]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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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으면 곧 새벽이 오고 겨울이 깊으면 따뜻한 봄도 멀지 않은 법이다. 극도의 좌절감에 시달리며 '겨울 나그네' 를 작곡하던 30세의 청년 슈베르트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다.

'겨울 나그네' 를 작곡한 1827년은 슈베르트에게 '냉혹한 겨울' 이었다. 궁정악장에 응모했다가 고배를 마셨고 존경해 마지 않던 선배 작곡가 베토벤도 세상을 떠났다.

출세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 것이다. 겨울 여행을 떠나는 고독한 방랑자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빌헬름 뮬러의 시 24편에 곡을 붙인 'Winterreise' 는 국내에서 소설.뮤지컬.가요의 제목에서 '겨울 나그네' 로 굳어진지 오래지만 원래는 '겨울 여행' 이라는 뜻이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이 곡을 녹음한 음반은 무려 10종에 이른다.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첫 독창회를 열었을 때도 이 곡을 택했다. 1971년 원숙기에 접어든 성악가와 72세의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가 녹음한 음반(DG) 이 명반으로 꼽힌다.

가사의 뉘앙스를 십분 살려내는 음색의 향연 못지 않게 주인공의 내면 풍경을 세밀한 터치로 그려낸 피아노 반주도 일품이다.

성악가와 피아노가 농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단순함에서 깊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슈베르트 가곡의 정신과도 통한다. 피셔 디스카우가 그린 수채화 '겨울' 이 음반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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