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36계로 풀어본 남중국해 영토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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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중국과 필리핀이 40일 넘게 대치하고 있는 남중국해 시사(西沙)군도 황옌다오(黃巖島·스카보러 섬) 사태를 살펴보면 각국의 외교전이 아니라 치열한 병법(兵法)이 번득인다. 중국 고대 병법의 정수(精髓)라는 손자병법(孫子兵法)과 ‘36계(三十六計)’가 난무한다.

 먼저 시비를 건 필리핀은 기막힌 시점을 택했다. 지난달 11일 필리핀 군함이 이 섬 부근에서 조업 중인 중국어선 나포를 시도하면서 양국 대치가 시작됐다. 이때는 미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5일 앞두고 있었다. 36계 중 ‘수상개화’(樹上開花·29계), 즉 힘이 약할 때 강자를 등에 업고 벌이는 책략이다. 미국과 필리핀의 훈련이 시작되자 예상대로 중국은 미국을 향해 “영토문제에 간섭 말라”고 쏘아댔다.

 이때 미국이 순발력 있게 내놓은 표면적인 답은 ‘중립’이다. 일단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며 시간을 벌자는 ‘격안관화’(隔岸關火·9계)다. 이후 미국은 남중국해 항해권을 들고 나왔다. 필리핀을 앞세워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차도살인(借刀殺人·3계)이고 웃음 속에 칼을 숨기는 소리장도(笑裏藏刀·10계) 전략이다.

 중국의 반응이 거세자 당황한 필리핀은 ‘국제중재 회부’를 들고 나왔다. 이 섬이 중국에서 1111㎞, 필리핀에서 233㎞가 떨어져 있으니 중재로 가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원(元)나라 때부터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그래서 필리핀의 국제중재 회부는 고통인 줄 알면서도 감행하는 ‘고육계’(苦肉計·34계)나 다름없다.

 병법 원조국이라 자부하는 중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철저히 ‘살계하후’ 전략이다. 필리핀(닭)에 본때를 보여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일본·인도네시아·베트남(이상 원숭이) 등을 경계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온 게 ‘상옥추제’(上屋抽梯·28계)다. 지붕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 고사시키겠다는 거다. 한 달여 필리핀의 행동에 외교적 수사로만 대응하더니 갑자기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 검열을 강화하고 군 비상태세를 발동했다. 일단 경제로 목을 죄고, 안 되면 군을 동원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병법전쟁의 승자는 누굴까. 손자병법보다 수백 년 뒤에 나온 구당서(舊唐書)에 이르길 ‘수기응변(隨機應變)’이라 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승리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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