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나라] 이제 공은 구단으로 넘어갔다

중앙일보

입력

며칠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 집행부는 ‘사단법인 설립을 관중 6백만 명이 될 때 까지 유보한다’ ‘현집행부는 사퇴한다’ 라는 안을 내놓음으로 해서 백기를 든 것과 다름이 없는 양보안을 내놓았다.

첫번째는 사단법인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침체된 프로야구 분위기로는 관중동원 6백만 명은 언제 이뤄질 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빨라야 5년이며 더 이상은 지나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그 동안 구심점이 되어왔던 집행부가 사퇴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될 때 자칫 구단의 입김과 간섭이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선수협 존립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타협을 위한 양보안이 아니라 백기투항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번 결단은 선수협 소속 선수들이 프로야구 중단이라는 파국(破局) 만은 막자는 생각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구단에서 요구한 선까지 양보를 한다면 선수협 존재의 의의가 없게 된다. 선수협의 설립 이전과 지금까지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말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선수생명를 내놓고 투쟁하고 또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게 헛수고가 되어 버린 거나 마찬 가지다. 오히려 강병규를 비롯한 몇 몇 선수들이 피해만 봤을 뿐이다.

현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은 첫째 책임은 두 말 할 것 없이 구단측 태도에 있다. 그들은 지난 겨울부터 시종일관 선수들이 사단법인 설립을 포기하고 현재의 집행부가 물러나고 재구성만 이뤄지면 선수협 요구사항은 전면 수용하겠다던 구단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 터무니 없는 트집을 잡고 대화 조차 않겠다는 배짱을 부리고 있다.

다시 말해 선수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해라는 후안무치의 자세다.

선수협에서 저자세로 나오니 이번 기회에 아예 발본색원하겠다 것인데 여기서 구단들은 크나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그들이 여기서 더 이상 강하게 나오면 선수협에게 다시 강경책을 쓸 계기를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파국으로 치닫자는 말인데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이는 구단이 정녕 프로야구 발전을 원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제 공은 구단으로 넘어 갔다. 더 이상 구단이 선수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아예 공개적인 협상까지 회피한다면 선수협은 사단법인 등록을 강행하고 문화관광부 등 정치권의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야구계 자체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해결을 요청하는 다소 치욕적인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선수들은 실리는 물론이고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제 더 이상 양보할 것도 없다. 이제는 구단들이 여기에 좋은 응답을 보여줘야 한다. 양보는 양보를 낳고 강요는 강요를 낳는다는 진실을 깨닫기 바란다.

※ 신종학 - 프로야구 자유기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