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자연 다큐

중앙일보

입력

어린 시절 잠자리를 잡아 본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날개를 찢어 날게한 뒤 '추락' 하는 잠자리를 보며 즐거워했고, 짝짓기의 의미도 모르면서 '쌍잠자리' 를 잡느라 밤늦도록 집에 돌아갈 줄을 몰랐다.

오는 16일 EBS가 방영할 특집 다큐 '잠자리' (밤 9시55분) 는 잠자리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았다.

몸에 별 무늬가 있는 큰별박이 왕잠자리, 배밑에 노란 무늬가 있고 청동빛이 나는 밀노란 잠자리, 멸종위기에 놓인, 크기가 2㎝도 채 안되는 꼬마 잠자리, 아름다운 날개를 자랑하는 나비 잠자리 등 25종의 희귀한 잠자리들이 등장한다.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황줄 왕잠자리를 제주도에서 카메라에 포착한 것도 성과 중 하나다. 이끼 속에 알을 낳는 독특한 산란 습성도 공개됐다.

전후좌우, 급회전과 정지비행을 자유롭게 하는 이들의 비행 모습을 보면 미래의 우주 비행선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잠자리가 스스로 존재의미를 얻는 '비행' 을 하기까지는 1년여 동안 물 속에서 애벌레로 지내야 한다. 또 그 중 30% 정도 만이 하늘을 날며 잠자리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자연 다큐에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교미다. 수컷은 암컷이 자기 세력권에 들어오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암컷을 낚아채 짝짓기에 들어간다. 특히 하트 모양을 그리는 물잠자리의 교미장면은 잉태의 신성함이 예술로 승화한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제작진은 이 다큐를 찍기 위해 1년여 동안 오대산.광릉.제주도 등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잠자리에 가장 적합한 생태환경을 지닌 전남 곡성군에선 수 개월을 머물며 잠자리와 동고동락했다.

다큐 카메라맨으로 일하다 직접 연출까지 맡게 된 카메듀서 (카메라맨과 프로듀서의 혼합어) 1호인 이의호씨가 직접 제작했다.

이씨는 "우리 주변에서 인간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물들을 통해서 각박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동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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