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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독일이 왜 강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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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만복
호서대 기계공학부 교수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서 독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프랑스와 그리스의 선거 결과로 위기 가능성이 재론되자 다시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위의 지인들이 묻는다. 독일의 강한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고. 정치 전문가가 아닌 공학도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고 독일회사에 오래 근무해 독일을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왜 독일이 강한가? 경험을 통해 나는 바로 산책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독일인들은 유난히 산책을 좋아한다. 산책은 이들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평생 엄격하고 규칙적인 산책 습관을 지킨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잘 알고 있다. 또한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유난히 저명한 독일 철학자가 많다. 산책과 철학과 과학기술의 연계성을 찾는 것, 이는 필자에겐 아주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과학이란 결국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 호흡하며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산책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색의 여유를 주며 철학적 사고력을 강화시켜 관념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갖추게 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은 결국 과학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고대의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와 근대의 파스칼 등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뛰어난 과학자였다. 칸트도 수학과 물리학에 심취해 첫 저서가 철학이 아닌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을 바탕으로 한 기술력은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무한경쟁력의 토대가 되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철학적 통찰을 모든 학문에 접목시켜 기술과 실제 응용분야의 기본을 강화했다. 이러한 사고의 틀을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국가운영체계에 도입해 시스템화에 성공한 것이 바로 독일의 힘이다. 한마디로 그륀틀리히(gruendlich·근본적)라는 단어가 독일의 사회제도와 독일인의 사고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맹주로서 역할을 계속 담당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흔히 독일인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근면과 검소함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원래 근면하고 검소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의 틀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기본적으로 형성된 사고의 틀이 행동에 나타나는 중요성과 함께 국가제도의 틀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침몰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중국의 일당 독재 시스템의 붕괴를 예견하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은 일찍이 독일 시스템을 도입해 국가제도와 국민의식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중국 또한 이상하리만큼 테크노크라트로 구성된 국가 지도자들이 독일의 제도를 선호하고 있어 이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이들은 오래전부터 독일의 합리성과 논리성에 의한 흔들리지 않는 뿌리의 저력을 인지하고 배워 튼튼한 자생력을 갖추었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밑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능력에 따라 보장하고 추호의 편법을 허락하지 않고, 개인의 관념과 부정부패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 사회구조, 초월적 권력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힘을 요구하는 정치풍토를 이룬 독일의 원동력을 우리는 어떻게 도입하고 배울 것인가? 그동안 많은 지도자가 내놓은, 국가를 위한 수많은 정책의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불안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작금의 국제정세에 우리도 이제 국가 정책과 제도에 “왜”라는 질문을 심각히 던져야 한다. 산책은커녕 빌딩 숲에 둘러싸여 오로지 아스팔트 길을 따라 학원만 오가는 우리 자녀의 정서를 다시금 돌아볼 때다.

이만복 호서대 기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