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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VIP 보고’ 대통령이 입장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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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간인 불법사찰 내용이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찰을 담당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한 문건에 지원관에서 VIP, 즉 대통령에 이르는 보고 체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사찰의 전체 윤곽이 드러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업무추진 지휘체계’란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노 정권 코드 인사들의 음성적 저항’ 등으로 VIP의 국정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립됐다고 한다. 특히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 조직이 비선(秘線)에서 총괄 지휘’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으로 함’ 등이 함께 적혀 있었다. 이 문구들은 지원관실 활동이 철저히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것으로, 그를 보고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장이 상당한 분량의 사찰 내용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대목은 지원관실 인사들의 전근대적인 인식이다. 행정 조직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어떻게 ‘절대 충성’ ‘친위조직’ ‘별도 비선’ 같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자료 삭제의 몸통’임을 자칭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이인규 전 지원관 등 이 대통령 출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영포(영일·포항) 라인이 사찰을 주도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검찰이 확보한 별도의 자료에 따르면 지원관실은 2009년 새누리당 현기환·정두언 의원과 민주통합당 백원우·이석현 의원 본인 또는 주변 인사들도 사찰했다. 공공기관장·고위 공무원 등에 대해선 “따라붙어서 잘라라” “날릴 수 있도록” 등의 지시 사항이 들어 있다고 하니 지원관실이 VIP의 후광을 등에 업고 얼마나 설치고 다녔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실제로 보고받은 일이 있느냐, 보고를 받았다면 과연 어느 선까지 받았느냐일 것이다. 검찰에서 진상을 조사해야겠지만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의혹을 받게 된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7조)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고 있다. 정부 기관의 국민 기본권 침해에 관해 침묵을 지켜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는 앞서 지난달 초 다량의 사찰 문건이 공개됐을 당시 대통령이 직접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 바 있다. 대통령이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히지 않는다면 검찰의 수사 결과도 신뢰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의혹의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입장 표명 시기를 늦출수록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 증진에 노력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했던 2008년 2월 취임식 때의 각오를 되새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