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복지예산, 담당공무원이 빼 먹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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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강령을 뜯어고쳤다. 당 이름을 바꿨듯이 강령이란 어려운 한자말도 ‘국민과의 약속’으로 바꿨다. 10대 약속의 첫째가 복지이고, 그 다음이 일자리다. ‘최고의 복지’라는 일자리가 앞서야 할 것 같은데, 복지라는 유행어에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다. ‘성장 없이 복지 없다’는 말은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로 요즘은 다들 복지를 외치고 있다.

 일인당 소득이 몇 만 달러든 정부가 뒷전에 처진 사람들을 돌보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복지예산이 목적에 맞게 쓰여진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여기저기서 샌다. 담당공무원이 챙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사업복지사업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나랏돈으로 제 잇속을 채우려는 이들이 종종 있다. 6세 미만의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 어린이집이다. 유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감독을 받는 반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교육기관이기보다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뜻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고 저소득층의 복지 확충을 위해 정부가 각별히 신경 쓰는 곳이다. 공공성이 강하지만 이런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기 사업이라고 여긴다. 그 결과 사리(私利)를 앞세우게 되고 피해는 부모들에게 돌아간다.

 서울 강서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70대 중반의 원장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준다며 부모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다. 30분씩 주 2회 영어수업을 하는 것으로 외부업체와 계약(원생 1인당 8000원)하고 부모들에게는 3만원씩 받았다. 2년도 안 돼 이렇게 번 돈이 1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원장은 일부 원생만 우유를 먹는데도 모두가 먹는 것처럼 장부를 꾸며 세금 1200만원을 축냈다. 자기 차에 기름을 넣고는 어린이집 차에 주유한 것처럼 조작한 경우도 있었다. 현장학습 가는 전세버스 비용을 부풀려 몇 백만원을 챙긴 원장도 적발됐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해먹은 천문학적 액수에 비하면 껌값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회 곳곳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했다는 증거다.

 이런 비리 행태는 앞으로 복지 지출이 느는 만큼 누수(漏水) 예산도 증가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걸 보는 납세자들은 자연히 세금을 덜 내려고 할 것이다. 애써 일해 나라에 세금을 바쳤는데 이렇게 허투루 쓰여진다면 납세 저항은 커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세금 내기를 싫어한다. 나라와 사회를 위해 제대로 쓰여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돈(세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6~2009년 4년간 사회복지 분야의 누수 예산은 거의 3000억원에 달했다. 보건복지부가 이 기간 중 10억원 이상 보조금을 받은 29개 민간단체를 지난해 감사한 결과 28곳에서 부정이 적발됐다. 복지예산은 담당인력이 부족해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담당자들은 너무 힘들다며 이 일을 기피하고 있다.

 앞으로 늘어나는 복지예산을 집행하려면 공무원을 증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는 돈도 막고, 수혜자 선정은 제대로 됐는지 따져봐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지원을 받아 이미 사회복지 공무원을 늘리고 있다. 절대 명심할 게 있다. 이들이 예산을 축내는 당사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지예산 확충보다 중요한 것이 공무원의 직업윤리 강화다.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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