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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의 예언 “그리스 내달 유로존 탈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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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6월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평소 유럽이 재정긴축에 집중해 실물경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중앙포토]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탈퇴는 이제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 주요 외신은 “유럽중앙은행(ECB) 고위 인사마저 드러내 놓고 그리스의 이탈 가능성을 입에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날 한술 더 떠 ‘그리스 6월 탈퇴설’까지 등장했다. 구체적인 시점까지 제시하며 과감한 예측을 내놓은 인물은 바로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다.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는 뉴욕 타임스(NYT) 홈페이지에 있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는 ‘Eurodammerung(유로화의 황혼)’이란 글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게 다음 달(6월)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루그먼은 단순히 6월 탈퇴설을 제기한 게 아니었다.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우리 가운데 몇몇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토론해 왔다”고 밝히며 이후 시나리오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이른바 ‘크루그먼 묵시록’을 공개한 셈이다.

 크루그먼은 그리스 탈퇴가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방아쇠가 될 것으로 봤다. “스페인·이탈리아 시중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제프리 삭스(경제학) 컬럼비아대 교수가 말한 ‘불신의 회오리’ 탓이다. 삭스는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시장은 스페인·이탈리아도 유로화를 포기할 수 있다는 의심의 회오리에 빠져 이들 나라에서도 연쇄적으로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크루그먼은 위험국가에서 이탈한 자금이 독일로 이동할 것으로 봤다.

 크루그먼은 유로존 국가가 어떻게 뱅크런에 대응할지도 예측했다. 그는 “예금 인출을 제한하고 자금을 해외로 반출하지 못하는 방식 등 사실상 예금 동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ECB가 자금을 퍼부어 (뱅크런에 시달리는) 은행이 파산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맹주인 독일은 불신과 공포의 광풍이 부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크루그먼은 독일이 간접적으로 스페인·이탈리아를 지급 보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 예금자나 채권 보유자의 공포가 진정될 수도 있다. 스페인 등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독일은 재정긴축을 중심으로 한 기존 위기 대응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 크루그먼은 유로존의 물가안정 목표(인플레이션 타깃)를 높이는 카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ECB의 물가안정 목표는 연 2%다. 물가를 올려 채무의 실질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은행 등 채권자 입장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디폴트(Stealth Default)’다. 인플레이션 등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채권자가 받을 돈을 줄일 것이란 뜻이다.

 독일이 지급보증 등의 대책을 쓰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크루그먼은 “유로화의 종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앞으로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새에 (뱅크런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로 시나리오를 마무리했다.

 크루그먼 묵시록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2008년 초에 내놓은 ‘금융 붕괴 12단계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루비니는 세계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사실상 붕괴한 직후 집값 폭락 이후 벌어질 일을 단계별로 제시했다. 그는 “베어스턴스 이외에 또 다른 금융 공룡 한두 곳의 운명도 위태로울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실제 그해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메릴린치는 파산 직전 매각됐다.

뱅크런(Bank Run)

예금자가 한꺼번에 몰려 예금을 찾는 것. 뱅크런이 발생하면 시중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고 더 나아가 파산할 수 있다. 은행이 예금 가운데 일부만을 지급준비금으로 돌려놓고 거의 모두를 대출해 주고 있어서다. 은행은 예금자가 한꺼번에 몰려들면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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