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10년 별거, 좀 더 일찍 이혼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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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사진)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지난달 말 친분이 있는 일본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산케이(産經)신문 계열의 ‘석간 후지’가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보 전 서기가 4월 26일 일본 ‘국회신문사’의 우타가와 게이스케(宇田川敬介·43) 차장과 베이징의 고급호텔 ‘북경반점’ 3층 별실에서 세 시간 동안 식사를 함께하며 인터뷰를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계의 거물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가 정치자금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날이다. 보 전 서기는 대화 말미에 “일본에선 부활이 가능하군…”이라며 “아이 섈 리턴(I shall return·나는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시라이 사건은 보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살해사건 외에도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설, 부정축재 의혹과 쿠데타설 등 대규모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보 전 서기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번 사태는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이 아니다. 나는 충칭시 간부로서 마피아 조직을 철저히 단속해왔다. 마피아와 유착한 시 간부들도 철저히 배제했다. 이것이 원한을 산 거다. 별거하고 있는 아내 관련 사건이 터지는 시점에서 마피아 잔존 세력의 함정에 빠진 거다.”

보 전 서기는 10년 넘게 별거 중인 구카이라이의 영국인 살해 의혹을 부인하지 않으며 “이혼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보 전 서기 부부는 ‘아이 교육과 출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 이혼하지는 않고 별거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우타가와는 베이징에서 다른 중국 공산당 간부와 만나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 간부는 “만약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부인이 영국인을 살해하고 측근이 미국 대사관으로 도주했다면 노다 총리는 현직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 권력투쟁이라는 기사는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국회 주변의 이야기를 전하는 비주류 우익매체의 기자가 어떻게 연금 상태인 보 전 서기와 인터뷰할 수 있었을까. ‘석간 후지’에 따르면 우타가와는 과거 일본의 수퍼마켓 체인 마이칼에서 근무하던 시절 보 전 서기와 인연을 맺었다. 1997년 마이칼의 다롄(大連)점 개설 문제로 당시 다롄 시장이던 보시라이와 가까워졌다. 2000년엔 보 전 서기와 부인 구카이라이의 이혼조정에도 참여했다.

우타가와가 보 전 서기의 가족 내부 사정에 밝다는 사실을 안 중국의 정보기관 ‘국가안전부’는 지난 3월 그에게서 수사 관련 협조를 받았고 그 대가로 인터뷰가 성사됐다고 ‘석간 후지’는 전했다. ‘사진촬영과 녹음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은 인터뷰는 국가안전부의 감시하에 이뤄졌다. 국가안전부 관계자 한 사람이 식사 자리에 배석했고 별실 바깥엔 제복 차림의 공안 두 사람이 경비를 섰다. 통닭구이와 샥스핀 찜, 베이징 덕과 전복 스테이크가 식사로 나왔다. 우타가와는 “보 전 서기는 약간 수척해 보였지만 표정은 온화했다”고 말했다.

◆보시라이=1949년 산시(山西)성 딩샹(定襄) 출신. 마오쩌둥과 함께 대장정에 참여한 중국 공사당 8대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 겸 재정부장의 둘째 아들. 다롄 시장과 랴오닝 성장, 상무부장 등을 거쳐 2007년 충칭시 당위원회 서기 . 2012년 3월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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