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미 부동산 빚 깎아줬다…다른 나라도 한바탕 빚잔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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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제프리 삭스(58·사진) 미국 컬럼비아대(경제학) 교수는 부채 문제의 최고 전문가다. 1990년대 이후 빚에 허덕인 남미와 동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그의 조언을 구해 왔다. 지난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글로벌녹색성장서밋 2012’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11일 만났다. 세계경제의 발등의 불인 유럽 부채 위기에 화제가 집중됐다.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가능성은 아주 크다. 몇몇 사람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해도 비용이 크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금융시장도 크게 흔들릴까.

 “그리스의 이탈 가능성이 커지면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가 뒤따를 것이라고 시장이 베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유로존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위기 증상을 보이는 회원국에서 자금이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할까.

 “(한숨을 쉬며) 생각만 해도 전율이 느껴진다. 스페인은 그리스보다 훨씬 크다. 그리스 사태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삭스는 상아탑에서 추상적인 경제이론만을 다뤄온 학자가 아니다. 멕시코·아르헨티나·체코 등의 경제 고문으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정치와 경제를 함께 볼 줄 아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그에게 프랑수아 올랑드(58) 프랑스 사회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의미를 물었다.

 “올랑드 당선은 유럽에 아주 좋을 수 있다. 지금까지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57) 프랑스 대통령이 일관된 전략을 마련해 추진했다. 하지만 지금 유럽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 전략은 무엇인가.

 “단순한 예산 삭감과는 다른 것이다. 유럽은 금융 시스템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시중은행들을 되살려 자금이 중소기업 쪽으로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이 문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올랑드는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듯하다. 또 유럽은 태양열 발전 등 21세기형 인프라 투자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빚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부채를 줄여줘야 한다. 그리스 부채구조조정(워크아웃)엔 민간 채권자만 참여했다. 유럽중앙은행(ECB) 등 공공 부문 채권자들도 빚을 일부 탕감해줘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만 유럽 가계 부채도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게 부동산 담보대출(모기지)이다. 미국에선 이미 시중은행들이 부실화한 모기지를 사실상 탕감해 줬다. 다른 나라에서도 한바탕 빚잔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은행이 부실화하면 공공 펀드를 이용해 자본금을 늘려주면 된다.”

 삭스의 이런 주장은 ‘케인시안’의 태두인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상통한다. 케인스는 30년대 금리 소득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중앙은행이 나서 정부의 이자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랑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회원국 국채를 직접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ECB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ECB가 회원국 국채를 직접 사준다면 재정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20년대 지독한 인플레이션을 겪어본 독일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올랑드 주장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강남규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제프리 삭스

미국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자라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재학 중인 29세에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글로벌 100대 경제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그를 학문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 현재 컬럼비아대에서 교수 겸 지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빈곤의 종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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