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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문제 시급한 김정은, 체제만 유지 된다면 대남정책 전환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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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14면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북한 논쟁을 시작하기 앞서 지난 10일 토론 참석 학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조동호 이대 교수, 중앙SUNDAY 안성규 에디터, 백학순 세종 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지수 명지대 교수, 정용덕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박명규 서울대 교수

안성규 에디터=김정은 등장 이후 남한에 대한 태도가 유화적이지 않다. 그의 등장이 남북 모두에 위기일지 기회일지부터 짚어보자.
박명규 교수=최고지도자가 세 번째 바뀌는 것은 어쨌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북한의 사령탑이 바뀌었고 또 내용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역량이 뛰어난지 앞으로 잘될 것인지와 별개로 북한과 남북 관계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한국전쟁이나 1960~70년대 사회주의 성장의 경험이 없는 새로운 젊은 세대가 출현했기 때문에 북에도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일 것이다.

연중 기획 한국사회 대논쟁 ⑨ 김정은 시대의 남북 관계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젊은 지도자가 들어섬으로써 새로운 남북 관계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새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의미한다. 그런데 3대 세습을 한 김정은은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갖고 있다. 남북 관계에서 부채라면 최근 더 심해진 남한과의 불신과 대결이다. 좀 더 전향적 정책을 취하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은 자산이다. 남과는 정치·군사적으로 대립해 와서 어렵지만 경제 협력은 모두에 쉽다. 일반론이지만 김일성은 정치·사상강국을, 김정일은 군사강국을 이뤘으니 김정은은 경제강국을 이뤄야 한다. 남과의 경제 협력을 굉장히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명박 정부와는 안 한다는 입장이긴 하다.

이지수 교수=김정은이 맞는 국제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 그런 위기에 대응하는 유형은 두 가지다. 정권 교체 메커니즘이 정착된 나라에선 정권이 교체된다. 독일·일본이 그렇다. 그게 없는 나라에선 권력이 전복된다. 리비아·이집트·튀니지가 대표다. 북한이 기로에 섰다면 후자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외부 도전을 이미 80년대 말, 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 시기에 겪고 권력을 유지했다. 내구성인데 그 메커니즘은 인민의 지지, 민생 해결, 사회주의 포기, 시장경제가 아니라 통제 강화를 통해서였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경제와 협력을 통해 소프트 랜딩할 수 있는가. 오히려 통제 중독으로 갈 것인가. 기로에 섰다고 본다.

조동호 교수=남한의 정책적 호기다. 김정은의 북한은 비로소 제대로 된 북한, 인민 생활에 관심을 가질 열린 북한, 열릴 수밖에 없는 북한이다. 할아버지의 주체에 이어 아버지의 선군까지 닫힌 북한이었다. 주체는 혼자 살겠다는 것, 선군은 경제보다 군대를 앞세워서라도 살아남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는 경제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사망에 대한 북한 방송 보도도 요약하면 ‘사상·군사강국을 만드신 장군님께서 경제강국을 만들려고 고강도 현지지도를 하다 열차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를 이어받은 김정은은 경제강국으로 가야 한다. 이는 조심스러운 개방이다. 지난 4월 15일 태양절 때 김정은의 연설엔 새로운 게 없다. 아직 그럴 수밖에 없다. 속으로는 우습게 생각해도 ‘전임자께서 이뤄놓으신 위대한 업적을 이어받아 성과를 내겠다. 제가 그걸 할 수 있을지 참 두렵다’고 치켜세우며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나중에 간부들을 불러 ‘나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자기 색을 드러내는 거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시간문제라고 본다. 김정은은 때를 준비 중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만 보고 달라질 게 없다고 판단하긴 이르다.

백학순 위원=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서 공식 후계가 된 뒤 북한은 김정은의 시대였다. 아버지가 죽기 전 이미 군 견제장치를 하고 동시에 장성택·최용해·이영호의 도움을 받아 군을 완전히 잡았다. 최고지도자가 된 건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최근 연설도 특별히 경제 일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규격화돼 있다. 선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4월 15일 연설에 6~7가지 내용이 있는데 다섯 번째가 경제였다. 지금까지 공식적 연설은 선군이 나온 다음 경제가 나오는 표준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로서 김정은이 새로운 정책을 열 가능성은 갖고 있다.

이지수 교수=김정은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그의 주변이 어떤 목소리를 낼지 아직 모른다. 고르바초프나 덩샤오핑은 애초 자기 생각이 있었고 헤게모니를 잡자마자 시작했다. 김정은이 그런 철학을 갖고 나올지,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목소리 안 냈던 사람 중 김정은을 설득할 사람이 나올지 두고 봐야 한다. 그런데 요새 보도가 흥미롭다. 예를 들어 미사일 실패 보도인데, 이를 김정은이 지시했다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회주의에서는 정책 논쟁이나 헤게모니 쟁탈전이 있을 때 신문에 그런 상황이 기사로 나온다.

백학순 위원=김정은은 조금 새로운 리더십을 보인다. 지난 1월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 모델을 생각하라 했다. 3월엔 이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뉴욕에서 “새 지도부는 선대와 달리 미국과 싸울 의향이 없다”고 했다. 로켓 발사 실패 공개와 관련해 알려진 가장 정확한 설명도 ‘당 고위 관료들이 애도 기간이니 실패를 나중에 발표하자고 했는데 김정은이 하라 했다’는 것이다. 열병식 공개 연설도 놀랍다. 외국 기자들에게 자유 취재를 허용했다. 북한을 아홉 번 취재한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이 5월에 평양을 갔는데 자유 취재를 허용했다더라. 10일 조선중앙TV에 보도된 김정은의 만경대 유희장 현지지도도 놀랄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이다. 예전엔 안 그랬다. 그런 걸 보면 김정은이 다른 스타일로 나오고 정책도 그럴 수 있다.

박명규 교수=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체제 안정과 유지다. 스타일상의 가능성이 정책으로 전환될지는 불확실하다. 일종의 동도서기(東道西器)적 상황이 아닐까. 북한 체제의 ‘도’라고 할 체제의 핵심 논리는 바뀌지 않지만 ‘서기’를 일정하게 수용하고 활용하는 데까지는 왔다. 체제 전환까지는 안 돼도 경제에서 전략적 전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큰 조건은 체제 유지와 존속에 해가 안 된다는 확신이다.

이지수 교수=북한엔 권력 완충장치가 없다. 나라 위기가 리더십의 위기, 체제 위기로 된다. 대안이 없고 복수 정당도, 집단지도체제도 아니다. 김정은도 자기 권력을 지속·강화·재창출하려 한다. 그런데 인민의 지지를 얻는 것은 민생 경제, 협상 경제로 간다는 것인데 북에서 그런 경제 우선주의는 안 된다. 개혁도 개방도 정치권력이 유지되는 한에서 한다. 권력 유지가 우선이다. 그게 전제다.

안성규 에디터=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까. 오래 못 가고 조기 붕괴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백학순 위원=그는 수령 지위를 확고하게 획득했다. 3대 권력기관인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국방위원회 최고 지위를 다 가졌다. 김정일이 마련한 이중 보호장치의 메커니즘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런 방식으로 상당히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파탄 나면 반발이 있을 수 있다.

박명규 교수=완전 장악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제도적으론 지배가 보장됐고, 군림할 여건과 잠재력도 있지만 그게 다 실현돼 강력한 통치력을 갖기엔 아직 일천한 상황일 것이다. 장성택·최용해 같은 사람들이 잘 조직해 안정적으로 가는 것으로 보면 분권화의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경제 개혁 가능성도 그런 틈새로부터 나올 수 있다. 분권적 형태가 성공하면 김정은이 훨씬 유연하게 장악력을 갖게 될 것이고 이를 못해 강성 리더십으로 간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백학순 위원=분권적이라는 건 집단지도체제를 말하는데 북한 체제가 그렇지 못하다. 수령제가 현실 정치다. 젊은 지도자가 뭘 알겠나고 한다. 그러나 당·군·정 전문가의 도움은 받지만 최종 권위는 김정은이 갖고 있는 그런 형태다.

조동호 교수=장악력에는 세 측면이 있다. 첫째 김정일로부터 절대권력을 다 받았는지, 둘째 100% 충성을 받고 있는지, 셋째 고위 엘리트 그룹이나 최고 권력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힘을 갖는지다. 첫째는 받았고 둘째도 받고 있을 텐데 세 번째는 불확실하다. 세 번째 갈등은 있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조심스러운 개방으로 갈 것인데, 안정적일지 부작용으로 흔들릴지가 문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정은은 안 되겠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정용덕 회장=모두 변화 가능성에는 의견이 접근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핵 정책을 통해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얘기할 수는 없을까.

백학순 위원=북핵은 특수한 문제여서 김정은의 리더십 스타일로만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 마음대로 할 문제도 아니고 상대인 미국도 있다. 현재 대선 국면인 미국에 북한은 중요 이슈도 아니다. 김정은은 핵 문제를 그대로 갈 것이다. ‘북한을 위협한다’고 하는 정전체제도 그대로이며 그런 적대 구조 아래선 협력도 어렵다. 또 핵은 유혹적이다. 협상 카드도 되고 안 되면 그냥 보유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핵 보유는 근본적 이익은 아니고 도움 되면 갖고 아니면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협상이 제대로 안 돼 포기시키는 게 어렵다. 김정은이 발휘할 수 있는 융통성은 부족하다.

이지수 교수=북핵은 김정은 리더십을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냉전 때 리비아의 대미 관계는 초긴장 상태였다. 88년에 영국 민항기를 폭파시키고 범인도 내주지 않자 미국은 공습했다. 그러다 냉전이 끝났다. 벌판에 홀로 남겨진 심정으로 말하자면 카다피는 김정일·김정은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카다피한테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변했다. 폭파범을 송환하고 이탈리아로부터 50억 달러 전쟁배상금을 받았다. 아들이 ‘이런 식으로는 인민들이 굶어 죽는다’고 설득한 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박명규 교수=김정은은 핵 보유, 핵으로 나라의 자주권과 체제의 위엄을 세우는 데 무게를 두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5월 6일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회견에선 ‘평화적인 우주 개발과 핵동력 공업 발전을 힘있게 추진한다’고 말한다. 그게 핵의 경제적·비군사적 측면을 활용하고 싶은 의지, 문제의식을 피력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리비아처럼 핵 포기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조동호 교수=북한은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 평화적 핵에 대한 수요도 있다. 또 경제 살리기를 위해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절히 타협할 여지는 더 커졌다. 그런데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 포기를 안 한다고만 말하는 건 아닌가. 북한엔 죽느냐 사느냐 문제다. 과감하게 우리 정부가 나서서 북·미 수교를 시켜주고 북핵을 해결하게 할 수 있지 않겠나.

백학순 위원=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강압해봤지만 핵 보유만 늘었다. 북한은 일관되게 적대 정책을 버리고 평화적으로 가자고 한다.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거다. 미국이 그렇게 했느냐, 그렇게 보진 않는다.

정용덕 회장=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이행을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문제인가. 그리고 북한 핵 포기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 것 아닌가.

백학순 위원=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를 짚을 수 있다. 첫째,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란 강력한 비전을 가진 리더십이 최근 없었다. 미국에선 클린턴 때는 있었는데 부시 때 180도 바뀌고 불신이 극대화됐다. 오바마도 부시를 이은 전략적 인내를 한다. 둘째, 미국은 전략적 맥락에서 북한 문제를 본다. 미사일 방어(MD)와 북한을 연결 짓는다. 중국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셋째, 주한미군 철수 문제다. 평화체제로 가면 북한이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으로 우려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주둔해도 좋다, 다만 반북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균형자가 돼달라’고 했다. 더 근본 문제는 중국과 대결로 갈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 국제질서다. 미국도 선택 폭이 아주 제한돼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을 원치 않는다. 클린턴 때 관여 안 한 것은 옳은 방향으로 간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북한의 안정-한반도 안정 순이었다. 그런데 조지 부시 때 북한 붕괴로 돌아서며 달라졌다. 비핵화는 세 번째가 되고 북한 안정이 1번이 됐다.

이지수 교수=중국에 가장 중요한 국익은 내부 통합이다. 티베트나 위구르에 민감하다. 아직 하나의 중국이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중국은 가급적 주변 국가의 안정화가 제일 좋고 그런 시각에서 북한을 본다.

박명규 교수=평화체제로 넘어간다는 건 한반도에서 ‘투 코리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이것이 남북 관계에서 뭘 의미하는가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있는 것 같다.

조동호 교수=평화체제를 소위 진보는 찬성할 것이다. ‘복잡한데 일단 나눠 살자’는 점에서 보수·중산층의 지지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평화체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시점이다.

백학순 위원=평화체제는 좋지만 분단의 고착화라는 위험성이 있다. 통일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 그건 국민 인식과 관계 있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며 당사자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정치 지도자들이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어도 분단 고착적으로 갈 것이다.

이지수 교수=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차이가 있다. 이상적으로 평화체제는 바람직하지만 현실에선 모순이 발생한다. 투 코리아, 평화 공존의 실체가 뭐냐. 우린 이대로 가겠지만 북한도 현 정치·경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인가. 그런 북한이라면 핵 해결을 상상할 수 없다. 자력갱생을 못하는 북한은 시장경제로의 내부 변화가 있어야 하며 외부와의 경제 소통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한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혁과 개방이 필수인데 체제 유지가 우선이니 핵무기가 나오는 것이다. 핵, 평화체제, 정전체제 해소는 다 한꺼번에 가는 것이다. 투 코리아는 머리론 그려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이 되겠나. 평화체제는 어렵다.

조동호 교수=우리는 아무것도 않고 북한에 핵 포기, 개방·개혁을 주문한다. 북한도 개방하고 싶을 것이다. 권력 유지를 위해 경제를 살리고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뜻하는 개혁은 한참 뒤의 일이지만 개방에 대한 유인은 어느 정도 있는 것 아닌가. 개혁은 일종의 체제 전환인데 체제가 무너질까 봐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해주고 변하라고 한다. 조금씩 변하고, 화해·협력이 늘고, 우리와 비슷해진 북한과 합의해 통일하는 게 국민적 컨센서스 아닌가. 북한이 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국익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게 아니라면 북에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변해라’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건가.

백학순 위원=북한의 권력, 체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권력구조를 바꾸는 게 목적이라면 싸움밖에 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화해를 말하면서 4년간 속내는 붕괴론이었다. 붕괴론은 권력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해볼 만한데 불가능하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의 체제 성격을 인정하고 협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게 현실적이다. 조지 부시 정부의 네오콘 정책은 이념 과잉, 이상주의였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한국판 네오콘이다. 그래서 남북 관계에서 주인공들은 사라지고, 연평도 사건으로 한국의 통제 능력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중이 한반도를 관리하는 상황으로 가는데 언제까지 ‘북한 체제 싫다’ ‘붕괴해야 한다’는 관점에 설 것인가. 현실적인 환경을 만들어 수용할 건 해야 한다.

박명규 교수=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 같다. 붕괴론을 편 것은 아니지만 체제가 전환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결과가 왜 이렇게 됐는지 분석해야 한다. 남북관계도 층위를 나눠 정치, 경제, 사회·문화 각 부문에 정밀한 정책을 쓰지 않으면 좋은 목적이라도 실패한다. 때리기로 망하게 할 수 있겠지만 합리적 환경을 조성해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

이지수 교수=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다.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했지만 방식에서 실패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진 잘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재를 뿌렸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강경, 온건 다 해봤는데 변화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북한의 변화는 스스로 해야 한다. 개성공단도 그렇지만 북한이 우리 식으로 개혁해 해보겠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

백학순 위원=현 정부 대북정책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겉과 속의 목표가 다른 부정합성의 문제다. 불신과 대결을 심었다. 국제정치학에서 리얼리즘의 원조인 한스 모겐스는 1940년대 저서에서 외교에서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식은 안 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상대가 위협으로 느끼면 달성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붕괴론은 불신을 일으키며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앞으론 현실적 접근으로 해결 가능한 정책 목표를 세워야 한다. 정치 지도자도 한반도 문제에 주인의식, 당사자 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책엔 이명박 정부와는 의미 있는 차별성이 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의 많은 부분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평화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건 전쟁 상태가 끝나지 않은 적대 상황에 대한 근본적 해결 없이 신뢰 프로세스를 하겠다는 거다. 한계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비전을 갖지 않으면 미·중의 동북아 대결 속에서 남북이 뿔뿔이 흡수되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조동호 교수=평화체제를 말하지 않으면 전쟁을 원하는 것처럼 말하는 이분법은 안 된다. 그동안 지도자는 진보, 보수의 가운데에 서서 외연을 넓히려 했는데 그건 한계가 있다. 자기의 성격보다 조금 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외연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다 실패는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10년은 원칙은 문제였지만 성과가 있었고 이 정부는 원칙은 괜찮았는데 성과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정책은 신념만으론 되지 않는다. 융통성이 없었다. 다음 대통령은 임기 초기에 정상회담을 했으면 좋겠다.

박명규 교수=우리에겐 21세기 한반도 질서를 어떻게 갖고 갈지에 대한 디자인이 없었다. 다음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합의해야 한다. 지난 3~4년 사이 국민의 남북 관계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커간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그런 비판과 남북 관계가 이렇게 돼서도 안 된다는 여론이 같이 간다. 정부가 남북 관계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지 못해도 북한에 대한 호의로 연결되지 않는다. 북한에 거부감과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이 북한을 적대하는 정부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집합지성 같기도 하다. 차기 정부가 참고해야 하고 야권도 이런 문제의식을 무시하면 지지를 못 받을 것이다.

정용덕 회장=남북 문제는 역시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 시각이 필요하고 국민적 통합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선 의견이 일치됐다. 이번 선거를 기대해보자. 후보들이 확실한 공약을 세우고 국민에게 선택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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