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팀결산 (10)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중앙일보

입력

그들은 알고 있었다. 연봉 폭등의 시대에 돈 없이도 살아남는 방법을.

2000시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함께 가장 성공적인 구단중 하나였다. 특히 2개월 가까이 지속됐던 피말리는 티켓 경쟁에서의 승리와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여준 패기는 기립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1. 굿바이 뉴욕, 굿모닝 오클랜드

2000시즌을 앞둔 오클랜드의 근심은 1번타자와 마무리투수였다. 물론 외부영입이 정답이었고, 데려오고 싶은 선수도 많았다. 그러나 오클랜드엔 돈이 없었다.

평소 검약한 생활태도가 몸에 밴(?) 빌리 빈 단장은 결국 '초보 마무리' 제이슨 이스링하우젠과 빅리그 경험이 전무했던 테렌스 롱을 믿어보기로 했다. 빌리 테일러와 케니 로저스를 내주고 데려온 이 두 명의 뉴옥커는 지난 시즌 오클랜드 돌풍의 큰 원동력이었다.

테렌스 롱 : 타율 .288 18홈런 80타점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 3.78 6승4패 38세이브

2. 없으면 만든다

에릭 차베스(22), 벤 그리브(24), 라몬 에르난데스(24), 테렌스 롱(24), 미겔 테하다(24)

91승70패로 지구우승을 차지한 오클랜드의 라인업에는 25세 미만의 선수들이 5명이나 포진되어 있다. 이것은 1985년 LA 다저스 이후 15년 만의 일.

마운드라고 별다를 것은 없다. 팀 허드슨(25), 마크 멀더(23), 배리 지토(22).

오클랜드의 자체조달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를 통해 좋은 선수들을 확보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망주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있었다.

다른 팀들이 유망주가 보여주는 재능에 흥분하는 사이, 오클랜드는 그 재능이 '실제로 발휘될 수 있는가' 여부를 냉철히 판단한다. 오클랜드의 타자들은 마이너리그에서 인내심과 선구안을 배우고, 빅리그에 올라와서는 파워를 기른다. 때문에 이들의 스윙은 겸손하다.

리그에서 네번째의 낮은 타율로 세번째의 높은 득점을 올리는 미스테리도 이 대목에서 풀린다.

또한 오클랜드는 없는 살림이지만, 유망주에게 들어가는 돈이라면 절대 아끼지 않는다. 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 않는가.

3. 차선책이 최선책

마무리 이스링하우젠은 38세이브를 올리기는 했지만, 분명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 같은 특급마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특급마무리를 보유할 수 있는 팀은 흔치 않다.

따라서 오클랜드는 그들의 두번째 야구철학인 '최선책이 아니면 차선책'에 따라, 이스링하우젠의 주위를 제프 탬과 짐 메서라는 최강의 셋업맨들로 호위하는 전력보강책을 사용했다.

탬 & 메서 : 6승4패 7세이브 29홀드 121이닝 방어율 2.67

4. 젊은 에이스들

31승 8패.

빅리그 2년차의 팀 허드슨이 지난 2년동안 올렸던 성적이다. 데뷔전에서 5이닝동안 11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허드슨은 다시 2년만에 '20승 투수'가 되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특히 허드슨은 마지막 7번의 선발등판을 모두 승리로 이끌며 가장 중요한 순간,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방어율 1.16) 그의 존재 덕분에 팀은 별 걱정없이 케빈 에이피어를 내보낼 수 있었다.

7월은 오클랜드의 최대위기였다. 최고의 투수유망주였던 마크 멀더의 부진 속에 15승투수 오마 올리버레스가 부상으로 이탈했기 때문.

빈 단장은 고민끝에 아끼고 아꼈던 카드를 꺼냈다.

자로잰듯한 컨트롤에 데이빗 웰스급의 커브를 내세운 좌완 배리 지토는 7월 23일(한국시간) 데뷔전에서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강타선을 5이닝 2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며 빅리그 첫 승을 올렸다.

지토는 그 후 13번의 선발등판에서도 11번의 퀄러티선발을 기록함으로써 허드슨의 뒤를 이은 제2선발감임을 증명해냈다.(7승4패 2.72)

5. 이젠 월드시리즈다

지난 포스트시즌을 통털어 뉴욕 양키스를 가장 당혹스럽게 한 팀은 오클랜드였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우승의 영예는 패기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오클랜드는 벤 그리브를 내주고 투수력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브의 이적은 지난 시즌 플래툰으로 기용됐던 제레미 지암비와 애덤 파이어트를 모두 주전에 기용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한 랜디 벨라디가 지켰던 2루를 물려받을 호세 오티즈는 제2의 미겔 테하다를 꿈꾸는 파워히터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최악의 기동력과 불안한 내야수비는 월드시리즈를 향한 오클랜드가 넘어야 하는 마지막 산이다.

과연 그들이 FA시장에서 구경만해야 하는 운명을 이겨낼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에서도 단칸방에서 공부한 고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시절은 한참 전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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