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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훔치는 10대, 그 뒤엔 부추기는 어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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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학교를 졸업한 양모(17)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채 일정한 직업 없이 살고 있다. 양군은 이른바 ‘일진’ 출신이다. 그는 지난 3월 중학교 후배들을 불러모아 “비싼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애들을 파악해서 스마트폰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이렇게 해서 스마트폰 6대를 확보한 그는 이를 장물업자에게 팔아넘겼다가 절도 등 혐의로 지난달 24일 경찰에 구속됐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훔쳐 팔다 적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3월 한 달 동안 서울 은평경찰서가 스마트폰 범죄를 집중수사했더니 스마트폰 절도 피의자 83명 중 23명이 10대였다. 지난달 25일에는 후배 등에게 스마트폰을 훔쳐오라고 시킨 중학생 문모(14)군 등 10대 청소년 24명이 무더기로 강북경찰서에 검거되기도 했다. 또 지난달 13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검거된 장물 스마트폰 해외 밀반출 업자 김모(21)씨도 “훔친 스마트폰을 나한테 판 사람은 주로 10대들이었다”고 진술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절도에 나서는 것은 큰돈을 쉽게 벌 수 있어서다. 이수정 경기대(범죄심리학) 교수는 “ 스마트폰은 가격도 비싸고 훔치기도 쉬워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훔친 스마트폰은 기종에 따라 10만~50만원에 거래된다. 이 중 일부는 항공화물로 중국·베트남 등 해외로 밀반출돼 해외 중고시장에서 유통된다.

 훔친 스마트폰을 쉽게 처분할 수 있는 것도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 중고 스마트폰 매입업자의 연락처를 바로 알 수 있다. 지난달 경찰에 검거된 한 장물업자는 자신의 블로그가 검색순위 상위권에 노출되도록 자동 댓글 프로그램까지 이용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절도행위가 또래문화(peer culture)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연구위원은 “주변에 이런 범죄를 저지른 친구들이 늘어나면 죄책감이 없어지고 ‘다들 하는 일’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고 말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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