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음주운전보다 위험한 DMB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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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지난 1일 경북 의성군 25번 국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운전 중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안타깝고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주행 중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에 몰두한 화물트럭 운전자가 연습 중이던 여자사이클 선수단 일행을 덮쳐 3명이 죽고 4명이 크게 다친 것이다. 운전 중 DMB 시청 위험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사고다.

 그동안 우리 공단에서는 운전 중 DMB 시청의 위험성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지난 3월에는 실제 자동차 고속충돌시험을 통해 고속 주행 중 DMB 시청 등의 부주의로 인한 충돌사고가 발생하면 중상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이 경우 비록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동시에 에어백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중상 가능성이 99% 이상으로 나타났다. 고속 주행 중 DMB 시청은 어떠한 안전장치도 소용 없이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운전 중 DMB 시청은 음주운전으로 규정하고 있는 혈중 알코올 농도 허용치 0.05%보다 훨씬 높은 0.08% 수준과 같고, 교통사고로 인한 중상 가능성이 네 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속 100㎞ 주행 기준에서 운전 중 DMB 시청으로 운전자가 2초 정도 전방주시를 하지 못하게 되어 축구장 길이(110m)의 절반 거리를 눈감고 주행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운전 중 DMB 시청은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운전 중 DMB 시청이 대단히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자의 교통안전 의식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토해양부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운전자의 93%가 운전 중 DMB 시청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실제 3분의 1이 넘는 운전자가 운전 중 자주 또는 가끔 DMB를 시청한다고 답했다. 교통안전을 위한 운전자의 의식과 습관 개선이 매우 시급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버스나 택시 등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들의 교통안전 의식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들은 나에게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재산이 달려 있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운전에 임해야 한다. 운전 중 DMB를 시청하는 것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차제에 사업용 자동차에 장착하는 DMB는 교통정보 안내만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교통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자의 안전의식이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법과 제도다. 지난해 도로교통법이 일부 개정되어 운전 중 DMB 시청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벌칙 조항이 없는 훈시(訓示) 규정에 그쳐 운전 중 DMB 시청을 막을 법적 강제력이 없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범칙금 부과 등으로 운전 중 DMB 시청을 규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예방하지 못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아름다운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더 이상의 사고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관련 법규의 정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운전 중에는 DMB 시청을 하면 안 된다’는 교통안전 의식 제고가 우선되어야 한다. 나 자신부터 안전운전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작은 다짐이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