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목숨 앗아간 노래방 화재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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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일 부산시 부전동의 한 노래주점에서 불이 나 손님 9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6일 오전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반이 감식을 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래방 내부는 아수라장이 됐다.

5일 오후 9시쯤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시크 노래타운 19번 룸에서 일본어 동아리 회원 9명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김수영(29·여)씨는 입구 쪽 화장실을 다녀오던 중 안쪽 천장에서 하얀 연기가 치솟는 것을 봤다. 종업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사람을 대피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룸으로 돌아온 김씨는 일행에게 “불이 났으니 나가자”고 말했다. 재빨리 노래방 내부 복도로 나왔지만 실내는 이미 암흑천지였다. 복도에는 50여 명의 손님이 기침을 하면서 미로 같은 노래방 내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숨을 한 번 들이켜니 질식할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행들과 함께 휴대전화 불빛으로 앞을 밝히면서 손으로 코를 막고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입구가 보였다. 방금 다녀온 입구 쪽 화장실 덕분에 노래방 내부 구조를 파악해 둔 게 대피에 도움이 됐다. 김씨는 “대피하는 동안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고 종업원들도 ‘대피하라’는 안내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사망 9명과 부상 25명 등 34명의 사상자를 낸 부산 노래방 참사는 허술한 초기 대응에 미로 같은 내부구조가 화를 키웠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씨의 증언대로 종업원들은 불이 났는데도 손님을 빨리 대피시키지 않았다. 소방당국의 조사결과 노래방 주인 조모(26)씨와 종업원들이 자체 진화를 시도하다 실패한 뒤 뒤늦게 119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초기대응이 지연되는 동안 21번과 24번 룸 사이 천장에서 시작된 불길은 천장 방음재를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6일 오전 들어가 본 노래방 화재현장은 외부와 완전 차단된 미로 같은 곳이었다. 안내자가 없으면 대피로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6층짜리 상가건물 3층에 위치한 이 노래방은 560㎡ 크기의 내부에 ‘ㅁ’자 형태 복도를 따라 26개의 방이 마주 보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확인 결과 이 방들은 애초에 허가받은 24개를 26개로 불법개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부속실과 다용도실을 룸으로 개조해 2개를 더 늘린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너비 1.5m의 복도는 어른 두 사람이 마주치면 몸을 피해야 할 정도로 좁았다. 노래방을 둘러싼 유리창 26개는 두터운 합판으로 가린 채 완전히 밀폐돼 있었다. 이 때문에 화재 초기에는 적은 양의 연기만 외부로 새어 나와 목격자들이 큰 불이 난 줄 모를 정도였다.

 6일 오전 1차 현장 감식을 한 경찰은 최초 발화지점인 계산대 뒤 24번 방과 21번 방 천장이 심하게 그을려 있는 점으로 미뤄 일단 전기누전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정확한 화재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결과가 나오는 1주일 뒤쯤 발표될 예정이다.

  화재가 난 노래방 건물에서는 지난해 11월 7일에도 노래방 아래층인 2층 유흥주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 같은 건물에서 6개월 만에 또다시 화재가 발생한 점으로 미뤄 소방당국의 부실점검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사고가 난 노래방은 지난해 8월 소방당국의 점검에서 자동화재탐지설비 불량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 이를 보완했다.

부산=김상진·김윤호 기자

◆사망자 명단 ▶함진영(32) ▶제민정(23·여) ▶김지원(24) ▶서한결(21) ▶박승범(20) ▶김은경(25·여) ▶가얀(28·스리랑카인) ▶제무누(26·스리랑카인) ▶틸란가(25·스리랑카인)

창 없는 벽, 불법 개조, 미로 구조 … 9명 목숨 앗았다 #부산 노래방 화재 사상자 34명 … 인명 피해 왜 컸나
손님 대피는 뒷전, 불 먼저 끄려다 신고 늦어져
작년 같은 건물서 불 … 노래방도 설비 불량 지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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