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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자살은 전염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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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청소년기에 내가 가장 미혹됐던 것 중 하나가 ‘자살’이었다. 중학교 2학년 내내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당시엔 성적이니 대학이니 하는 문제에 그리 치열하지 않았고, 왕따도 없었으니 그런 핑계는 아니다. 다만 극적이고 로맨틱하게 죽고 싶은 강한 욕망에 홀려 있었다.

 요 몇 달 동안 중·고등학생들의 투신자살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왕따와 학교폭력 피해자, 공부도 잘하고 왕따도 아니라고 밝힌 여고생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구에서만 최근 모두 7명이 목숨을 끊어 이 도시의 평년 평균 자살 학생 수에 육박한단다. 이 가슴 서늘한 뉴스에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살의 미혹’은 청소년기에 겪는 방황·분노·열등감과 같은 성장통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살예방 상담교육을 하는 ‘밝은미소운동본부’ 관계자는 청소년기 자살충동이 ‘뇌의 장난’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사고가 자라다 외부 요인과 결합해 ‘욱’하고 저질러버린다는 거다. 전화상담을 해보면 첫마디가 그저 ‘자살하고 싶다’란다. 구체적 이유를 못 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고1 여학생 임상경험을 털어놓았다. 자살 시도로 어머니가 데려온 이 학생은 무작정 죽겠다고만 했다. 그럼 왜 진료를 받느냐고 했더니 연말 학교 행사를 보려고 그때까지 버티고 싶어서라고 하더란다. 전문의는 말했다. “청소년 자살은 단지 정신과적 이유만도 아니어서 답답하다.” 중앙자살예방센터 박종익 센터장은 “왕따 자살의 경우도 왕따가 유일한 이유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연유에서 비롯됐든 자살 고위험 상황에서 도움을 못 받고 있다가 외부 요인이 결합되며 실행한다는 것이다.

 자살의 외부 요인 중엔 의외로 타인의 자살도 주요인이 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자살을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자살 고위험군이 타인의 자살을 보고,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2008년 최진실 사망 직후인 10월, 자살자 수는 다른 달의 두 배 정도로 늘었다. 대부분이 최진실처럼 목을 맸다. 최근 청소년들의 연이은 투신도 베르테르 효과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모방 자살은 단기적이지만 집중적이어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청소년 투신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 처방으로, 미디어들이 자살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살 고위험군이 보도를 보고 모방하게 되므로 미디어는 전염병 확산의 주요 경로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자살 보도 시 자세한 정황을 묘사하거나 미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지침도 있다. 그런데 최근 사건들은 학교폭력이 배후에 있었고,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헝클어진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젠 자살 중계를 그만할 때가 됐다.

 올 3월 우리나라엔 자살예방법이 시행됐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보다 살 만한 세상을 조성하고, 긍정적 마음의 습관을 들이는 교육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살 만한 세상이라? ‘2012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자살충동 경험 청소년들이 꼽은 이유가 15~19세는 성적과 진학문제(53.4%), 20~24세 청년층은 경제적 문제(28.1%)가 가장 컸다.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그런 세상이 될 텐데, 단기적으로 가능한 해법이 아니어서 걱정이다.

 그럼에도 청소년기를 자살의 미혹에서 헤맸던 선배로 꼭 해주고 싶은 말은 ‘그 시간은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정말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자살의 욕망은 홀연히 사라진다. 더 살아보면 세상이 우호적으로 바뀌지 않더라도 내 생각과 시야가 바뀌면서 ‘살아볼 만한 세상’을 발견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래도 유혹이 떨쳐지지 않거든 ‘꼭’ 가까운 정신과나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 보건복지콜센터(129), 밝은미소운동본부(02-883-5630),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에 ‘도와달라’고 청할 것을 권한다. 자살의 미혹은 고쳐지는 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