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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고 벨로스터가 950만원? 혹해서 갔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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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11년 11월식, 주행거리 8000㎞, 950만원.’

 지난달 하순 온라인 중고차 광고 사이트 H사에 매물로 올라 있던 현대차 벨로스터(흰색) 정보다. 사고 경력도 없다. 동급의 신차 가격은 1790만원. 새 차나 마찬가지인 벨로스터를 거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고 광고한 것이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중고차매매단지 오토맥스 소속 딜러가 이 온라인 사이트에 돈을 내고 올렸다. 중앙일보가 차량번호를 토대로 정말 존재하는 차량(실차)인지를 확인해 봤다. 오토맥스가 소속된 한국중앙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의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차량 번호를 입력해 조회한 결과 이미 팔린 차로 나타났다. 허위매물이었다.

[그래픽=김영희]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 불법 허위·미끼 매물이 판치고 있다. 매매업자 사이에서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 정보는 두 대 중 한 대는 가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본지 확인 결과 가짜 매물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정보를 빼내주는 해킹 사이트마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5일 한 중고차 온라인 매매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정보. 이 매물은 이미 팔린 차량으로 드러났다.

 실태는 이렇다. 전국의 중고차 매매단지는 매물을 전산 관리한다. 단지 내 중고차 상사는 차를 인수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에 매물 등록을 한다. 그런데 A라는 업체에서 이 정보를 빼낼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딜러들은 10만원을 내면 이 업체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500대 매물 정보를 받을 수 있다. 그런 다음 가격을 낮춰 자기 물건인 양 온라인 광고 사이트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허위·미끼 매물로 소비자를 유혹해 매장에 오도록 한 뒤 다른 차를 보여주는 게 전형적인 수법이다.

 지난달 25일 현대차 벨로스터의 정보를 올린 딜러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물건을 보여줄 테니 매매단지로 오라”고 했다. 왜 그렇게 싼지 묻자 “경매로 나온 물건을 싸게 넘겨받은 것”이라고 답했다.

 부평의 자동차매매단지 오토맥스에서 딜러를 만났다. 이들의 수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와 함께 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딜러는 기자를 자신이 소속된 중고차 상사가 아닌 단지 내 캐피털(할부) 업체의 휴게실로 데려갔다. 동행한 이는 “자기네 업소로 데려갔을 때 가게에 붙어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보고 신고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귀띔했다. 여러 칸막이로 나뉜 캐피털 업체의 휴게실은 딜러와 상담받는 고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차를 보자고 하자 딜러는 “이미 계약된 데다 경기 광명에 차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가계약이라 차는 보여줄 수 있지만 오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같은 종류의 다른 차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가격에 대해 묻자 “950만원은 현금으로 내야 하는 거고, 구입할 때의 할부금을 끼고 있어 총 가격은 18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딜러는 “할부 승계를 알리지 않은 것은 미안하다. 요즘 광고를 다 그렇게 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동행한 업계 관계자는 “할부금을 승계해야 한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경매 낙찰금을 지급하는 즉시 할부도 정산이 완료된다는 것이다. 그는 “차를 할부로 구매하게끔 유도해 딜러가 캐피털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챙기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이런 수법 탓에 고객은 고금리의 할부를 끼고 차를 사게 된다.

 온라인 검색 사이트들의 수수방관도 허위·미끼 매물이 판치는 데 한몫하고 있다. 네이버는 ‘중고차’ 키워드 광고로 클릭 한 번에 2000원 안팎의 광고비를 받고 있다. 하루에 수만 건 클릭이 이뤄져 네이버는 이를 통해 연간 수십억~수백억원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짜 광고에 대한 책임은 없다. 전자상거래법상에 ‘통신판매 중개업자가 의뢰를 받아 중개할 때 의뢰자가 책임을 지겠다고 계약하면 면책된다(20조 2항)’는 조항 때문이다.

 부동산은 이와 다르다. 네이버는 2009년부터 등록되는 부동산 매물의 진위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콜센터를 두고 실제 주인과 통화하고 등기부등본 등을 열람한다. 그런 뒤에 매물을 올려놓게 하고, 팔릴 때까지 게시하는 조건으로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건당 1만원을 받는다. 네이버 원윤식 홍보부장은 “당시 허위매물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많아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다”며 “중고차 시장은 부동산보다 규모가 작아 확인 서비스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일반 소비자들이 허위·미끼 매물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나 한국중앙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같은 중고차 관련 연합회 사이트에서 진짜 매물인지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DB)가 미흡해 여기를 통해서는 전체 중고차의 일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허위·미끼 매물을 올리는 것은 불법이다. 자동차정책기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돼 있다. 그러나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국토해양부 박경철 자동차정책과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도감독권한을 갖고 있으나 일손이 달려 단속이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부터 집중 단속을 펼치고 그 뒤에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연계해 1년 내내 단속과 적발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에 더해 정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민원 포털사이트에 모든 중고차 정보를 올려 소비자들이 이를 통해 허위 매물이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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