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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4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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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원

몽당연필   변우연

검은 심, 너의 저녁이 육각형으로 저문다

깨알 같은 슬픔을 질긴 실선으로 쏟아낸다

척추가 닳고 닳았다 한 뼘의 몽당연필

제 몸으로 움켜쥔 못 다한 시한부 삶

흔적과 손때 묻은 흑심 침묵으로 피어난다

백지에 흘린 검은 피 모든 것이 유언이다

◆변우연=1946년생. 한국화가. 대한민국공무원 미술협의회 부회장. 현재 서울 마포문화원 강사.

차상

달덩이 양변기   엄미영

단단한 파편들을 수장하기 위해서

물을 품은 달덩이 양변기에 앉았더랬죠

이울다

차오르기를

무한 반복 재생하는

철없던 스무 살 적 눈물뿐인 사랑도

엉덩이를 보이고도 천연스런 거기선

미쁘게

랜덤 기억을

쏟아내곤 했더랬죠

편집된 영상으로 오늘이 환해진다면

버튼을 꾸욱 눌러 별 무더기 쏴아아

기꺼이

밤하늘 가득

밑거름을 줬더랬죠

차하

초승달    윤애라

추스르고 추슬러도

떨어지는 마음이다

그래도 참아보자고

쳐다 본 밤하늘에

우주를 잡았다 놓은

신의 환한 손톱자국

이 달의 심사평

손에 잡힐 듯한 감각 탁월
노년의 쓸쓸함 보여준 수작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수준 높은 응모작들이 많아 이 마당은 풍요로웠다. 그런 훌륭한 작품들 중 변우연 씨의 ‘몽당연필’을 이달 장원작으로 올린다.

심상이 두드러지고 감각이 손에 잡힐 듯하다. 작품 전체를 의인화하여 상징성을 더욱 높였다. ‘척추가 닳고 닳’은 노년기의 쓸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수작이다. 첫 수의 초장과 둘째 수의 종장에서 보여준 선명한 묘사만 봐도 그의 언어들이 얼마나 제련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차상은 상상력과 해학성이 돋보이는 엄미영 씨의 ‘달덩이 양변기’다. 구어체로 엮은 이 작품은 참 천연덕스럽다. ‘엉덩이를 보이고도 천연스런 거기’서 속에 것을 다 쏟아내면 ‘밤하늘 가득 밑거름’이 된다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차하는 윤애라 씨의 ‘초승달’이다. 깔끔하고 명징하여 사랑스럽다.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까. 자꾸 ‘떨어지’려는 ‘마음’이 안쓰럽다. ‘그래도 참아보자고 쳐다본 밤하늘’에 ‘신의 손톱자국’ 같은 초승달이 떠있다. 초승달은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달이다. ‘참아보자’는 마음이 눈물겨워서 신이 또다시 만들어낸 달이다.

심사위원=권갑하·강현덕(대표집필:강현덕)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늦게 도착한 원고는 다음 달에 심사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드립니다. 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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