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경제 view &

제2 강덕수를 꿈꾸는자 ‘파랑새’는 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요즘 기업의 상반기 공채가 한창이다. 얼마 전 치러진 총선 와중에도 대기업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에는 ‘○○기업 채용’이란 단어가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곤 했다. 젊은이들이 총선과 같은 정치적 이슈보다 취업을 더욱 민감하고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고도 스스로 퇴사하는 젊은이가 꽤 많다고 한다. 최근 중앙일보는 국내 10대 기업의 신입사원이 1년 안에 그만두는 비율이 9%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3년 내 퇴사하는 비율이 20%를 넘는다는 기업도 있었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의 실정이 이러하니 그보다 못한 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평균 4.1회 이직한다고 한다. 자신의 적성이나 꿈을 찾아 이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겠으나 직장생활을 멀리 내다보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조건만 따져 이직하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직(職)테크’가 전문성을 키워 몸값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직을 통해 몸값을 올리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나 직원의 잦은 이직은 기업의 인력 운용에 차질을 빚고 조직 분위기를 해칠 뿐만 아니라 금전적 손실도 가져온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해 보니 대기업이 신입사원 한 명을 뽑으려면 채용 과정에서 평균 189만원, 교육·연수에 375만원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뽑은 직원이 금방 사직하면 그 비용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미국경영자협회 조사에서도 직원 한 명이 이직할 때 회사가 보는 경제적 손실이 직무와 직급에 따라 이직한 직원 연봉의 50~250%에 이른다고 한다.

 신세대 직장인들이 조기 이직하는 현상을 한 연구소는 ‘파랑새 증후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이상만을 동경하는 동화극 ‘파랑새’의 주인공처럼 현재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직장을 탐색한다는 것이다. 파랑새 증후군은 입사한 지 1년 미만 직원의 65%가 겪고 있을 만큼 20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여기에 높은 스펙을 갖춘 입사자들의 ‘셀프홀릭(Self-holic) 증후군’까지 겹쳐 조기 퇴사 현상을 심화시킨다. 이 증후군에 빠진 이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자신의 능력에 비해 현재 하는 일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직무에 대한 불만을 쌓이게 하고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만든다.

 잡히지 않는 파랑새만을 쫓거나 셀프홀릭에 빠져 현재가 의미 없다고 여기는 직원들의 미래는 과연 밝을까. 성공한 기업인의 스토리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 일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했다.

 예를 들어 보자. STX그룹 강덕수 회장은 회사원으로 20여 년 일했지만 한 번도 자신을 월급쟁이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재무담당 임원 시절 조선업의 미래가치를 발견한 후 기회가 왔을 때 과감히 투자해 마침내 회사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때 퇴출위기에까지 몰렸던 그 회사는 이제 재계 순위 17위의 그룹으로 도약했다.

 BBQ라는 치킨 브랜드로 유명한 윤홍근 제너시스 회장 역시 샐러리맨 출신이다.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닭고기 사업 부문에 발령받았을 때 그곳은 판매량이 뚝 떨어져 있고 미수금만 잔뜩 쌓인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절박함과 오기로 위기에 처한 사업을 회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닭고기 시장의 가능성을 읽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BBQ는 지금 국내뿐 아니라 세계 56개국에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어떤 허풍쟁이가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로도스 섬에 있을 때 올림픽 승자보다 멀리 뛰었지. 내 말을 못 믿겠거든 거기 사람들에게 물어보게”라고 떠벌렸다. 이에 듣던 사람 중 한 명이 “자네 말이 정말이라면 증인은 필요 없네. 여기가 로도스라 생각하고 여기서 뛰어 보게”라고 일갈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금의 자리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비록 자신이 꿈꿨던 이상과 다른 현실에 처해 있을지라도 지금, 여기가 로도스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