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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트위터엔 친구 널렸지만 오프라인 세계선 외톨이 경우 많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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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이 쉴 틈이 없었다. 생머리에 안경을 쓴 얌전한 인상의 김모(18·고3)양은 고모 손에 이끌려 찾은 인터넷중독대응센터(서울 등촌동) 상담원 앞에서도 계속 스마트폰을 쥐고 만지작거렸다. 상담원이 “어디서 전화 올 곳이 있니?”라고 묻자 김양은 “전화 올 곳도, 친구도 없다”고 말했다. 김양이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것은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 관리와 게임 때문이다. 김양은 “혼자 있을 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학급 친구들과 대화를 해도 집중을 못한다”고 털어놨다. 상담을 하면서 김양은 자신이 현실 속 대인관계가 없다시피 할 뿐 아니라 시간을 내 다른 취미나 소일거리에 도전한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양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문자를 쓰는 사람을 보면 나도 문자 보낼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다른 이들의 페이스북을 찾아 읽고 댓글을 올린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 김양은 스마트폰 중독 고위험군 사용자로 나타났다.

#2 미국 명문대에 다니다 중도 귀국한 A씨(23). 귀국 후 그는 공부를 중단하고 오프라인 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일·공부·취미활동 등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는 상태가 1년이 넘었다. 오직 인터넷상에서만 소통했다. 외국의 친구들하고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통화도 하고 SNS도 활발히 쓰지만 정작 방문만 열면 만날 수 있는 가족들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A씨 어머니는 아들을 이끌고 와 한 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검사와 상담을 거쳐 강제로라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했지만, A씨는 자신이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SNS는 섬처럼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거리와 시간의 경계를 넘어 연결해 주는 놀라운 기술이다. 신체·정신적 장애를 가진 이들도 사회적 소통을 쉽게 할 수 있고,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등 순기능도 많다. SNS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보급과 맞물려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말 2000만 명을 넘은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는 올해 말 3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함께 늘어나는 중이다. SNS 중독 현상이다. 어린 학생부터 중년의 성인까지 예외가 없다. 직업, 사회적 성취도, 학력과도 별 상관이 없을 만큼 무차별적이다. ‘찻집에서 연인이 마주앉아 각자 스마트폰만 쳐다보더라’는 목격담은 진부할 정도다. 얼굴을 맞대는 상식적인 인간관계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대체할 기세다. 병적인 중독에 빠져 현실을 잃어버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SNS에 몰입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단순한 메시지의 반복적인 읽기·쓰기가 대부분인 SNS 활용에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손에서 떼지 못한다. 서울 등촌동 소재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대응센터를 최근 찾은 대학생 B씨는 “의미 없는 글을 쓰고 형식적인 댓글을 다는 등 하루 중 상당 시간을 SNS에 얽매여 사는 스스로가 싫다”면서도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아가면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일상적인 몰입 수준을 넘는 심각한 중독 사례가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사회적인 관심과 대책 마련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SNS 중독은 새로운 현상이라 아직 효과적인 대응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과거 인터넷·게임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될 때에는 PC를 없앤다거나, 인터넷 사용 시간과 PC방 출입을 제한하는 등 대증적이나마 해법이 나왔다.

하지만 누구나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모바일 기기가 널린 상황에서 하드웨어적 제한이나 사용 규제 등의 대책은 별 의미가 없다.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인 박용천 교수는 “스마트폰·SNS 중독은 새롭게 나타나 급속히 늘고 있어 아직 체계적이고 신뢰할 만한 진단·치료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다”며 “ 치료방법이 확립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중독대응센터 상담원 이승희씨는 “하루 40여 건의 전화·방문 상담을 받는 데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SNS에 중독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몇 건씩 나온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C군도 그런 경우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본 C군의 부모는 집 컴퓨터를 아예 없앴다. 이후 C군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 게임에 몰두했고, 학교에서도 스마트폰으로 게임·SNS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C군처럼 주변 사람이 권해 상담실까지 찾아온 사례는 그나마 낫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접하는 임상 사례는 한층 심각하다. 중학생 D군은 어릴 때부터 원치 않는 학원과 과외에 시달렸다.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 어머니를 칼로 위협하며 ‘학원 안 간다’고 선언한 뒤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자기 방에 들어가 가족과 대화를 끊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만 몰입했다. 결국은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여 강제로 입원해야 했다.

스마트폰·SNS의 중독 사례는 수도 급증할 뿐 아니라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상담센터를 찾은 정모(40·여)씨는 큰아들(중 2)의 스마트폰을 뺏어 집어던졌다. 남편(40)이 택배기사로 어렵게 일하는데 아들이 아버지 명의의 스마트폰을 쓰면서 이런저런 유료 앱을 다운받고 게임과 SNS에 빠져 살면서 3개월 동안 300만원을 썼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우울증 증상까지 있던 정씨는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살던 아들을 걱정하던 차에 고지서를 보고 화가 폭발했다. 정씨는 아들의 상담치료와는 별도로 자신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SNS가 또래 집단을 은밀하고도 강력하게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학교폭력 등에 사용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서구에서도 문제가 돼 사이버 불링(왕따)으로 취급되는 이 현상은 최근 불거지는 학교폭력 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심각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SNS 계정을 우선 확보할 정도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전국 초·중·고교생 12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SNS 등 사이버상에서 집단적인 욕설 등 왕따 피해를 봤다는 답변이 23.2%에 달했다.

이승녕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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