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의 물결, 신개념 가치투자 각광받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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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22면

주식시장은 마치 올봄 날씨처럼 변덕스러워 앞날 예측이 쉽지 않다. 기업이 잘나가면 투자자들은 장밋빛 전망만 본다. 하지만 투자자 관심이 사그라지면 이런저런 악재가 갑자기 불거져 나와 순식간에 상처투성이 기업으로 전락하곤 한다. 주식시장은 시장 참여자의 심리 변화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노련한 투자자도 때로는 길을 헤매기 일쑤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유럽의 전설적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변덕스러운 주가와 기업가치의 상관관계를 산책 나간 강아지와 주인의 관계에 빗대 설명했다. 강아지가 주가라면 주인은 기업이라는 얘기다. 주인 손에 쥐인 목줄에 매여 산책 나간 강아지는 제아무리 천방지축 뛰어놀아도 목줄을 벗어날 수 없다. 주인이 가는 대로 따라다닌다. 주가가 변덕스럽게 움직이더라도 장기적으론 기업 가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걸 코스톨라니는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한마디로 투자자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큰 그림은 말할 것도 없이 기업 가치가 움직이는 방향이다. 그림 속의 한 풍경에 불과한 변덕스러운 시장 모습에 너무 신경 쓰면 곤란하다.

매일매일의 주가 변화가 아닌 기업 가치에 눈을 돌리게 되면 자연스레 사회의 변화상에 관심이 간다. 사회 변화가 기업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투자 판단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는 끊임없이 기업 성장을 위한 기회를 준다.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어떠한 전략을 구사하는지에 따라 같은 업종 기업이라도 미래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기업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들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그것들이 기업에 불러올 변화와 그로 인한 기업의 미래상을 그려보게 된다. 이런 사고 과정이 이른바 ‘가치투자’의 첫 단계다. 가치투자의 묘미는 주위 환경이 기업에 미칠 영향을 예상하고, 그 예상이 향후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일례로 2010년 무렵을 돌이켜 보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위축된 한국 경제가 회복 국면을 맞던 시기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당시 해외여행 인구가 급증했다는 뉴스가 눈에 띈다. 금융위기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터져 나온 것이다. 국내 여행사들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면서 주가가 많이 올랐다. 해외 여행객이 늘면서 항공사 실적도 좋아졌다. 여행객 이외에 수출화물 운송 수요까지 늘어나는 겹경사를 맞았다. 중국·일본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내 면세점 실적도 덩달아 좋아졌다.

다 재미를 본 건 아니다. 경쟁력을 갖추고 적절한 대응 전략을 구사한 기업들만 그랬다. 좋은 여건 속에서도 실적을 내지 못한 기업도 많다. 하지만 그건 개별 기업의 문제다. 큰 틀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걷히고 한국 경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여행·항공 등 많은 업종에서 절호의 주식투자 기회가 발생했다. 가치투자 마인드가 있는 투자자는 괜찮은 수익률을 거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우리 사회는 투자자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성장 감속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저성장의 장기화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한국 경제는 고도 성장기를 지나 구조적으로 성장 여력이 예전 같지 않다. 중국 등 개도국 경쟁 기업들이 급성장해 우리의 이익을 압박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고성장 산업과 기업에 투자하는 데 익숙했다. 실제로 2008년 이후에도 한국 증시에서는 경기에 민감한 대형주의 주가가 많이 올랐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정보기술(IT)과 자동차는 물론 경기에 민감한 화학·정유업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성장률 둔화를 감안하면 더 이상 성장성 높은 기업 중심의 투자 전략은 유효하지 않다. 지난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3.6%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회복기였던 2010년 6% 수준에서 크게 하락했다. 앞으로는 성장이 더욱 더딜 수 있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오르내리는 불안정한 모습이다.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마저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일 정도로 투자 심리가 불안하다. 고성장에 큰 가치를 두는 주식투자 방식이 힘을 잃어가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시장 참여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시장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가치투자 방식을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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