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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가장 행복해요" 록밴드 자우림

중앙일보

입력

자우림(紫雨林)의 원래 이름은 '미운 오리' 였다.

"누군가 별 생각없이 툭 내뱉었는데 괜찮다며 계속 사용했어요. 그러다 영화 주제곡을 부르게 됐는데 자막에 밴드 이름이 들어간다잖아요. '미운 오리'는 좀 그렇지요? 필름 제작 종료 직전에 바꿨어요."(김윤아)

"난 자우림이라는 이름이 별로 맘에 안들더라구요. 우, 이게 뭐야, 그랬죠. 근데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잖아요."(이선규)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 이라는 뜻을 가진,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밴드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겨울철 평일 오후 2시의 대학로는 한산했다. 자우림과 늦은 점심을 함께 한 곳은 중년의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라면집이었다. 야채 볶음과 닭튀김, 엄청나게 큰 그릇에 담겨 나오는, 돈까스를 얹은 생라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행복하겠어요. 그쵸?" 라고 물었다. 물론 "예"라고 선뜻 답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1997년 데뷔 이후 이듬해 2집과 지난해 2.5집, 올 여름 발표한 3집까지 매번 20만장 넘게 팔며 슬럼프라는 걸 몰랐다.

1백만장 팔았네, 2백만장 넘었네 쉽게 말하는 요즘이지만, 모던록 밴드로서 이런 지속적인 판매량은 사실 대단한 것이다. 거기에 뮤직비디오도 인기지, TV 출연도 많지, 그러면서도 각종 매체와 평론가들로부터 줄곧 좋은 평가를 받으니, 음악을 하는 이로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들은 '운이 좋았다'거나 '멤버 구성이 좋기 때문'이라고 인기 배경을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점잖은 대답은 노 댕큐. 발랄하고 솔직한 자우림답지 않았다. 일단 넘어갔다.

자우림은 지난 가을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네티즌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참여연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로 꼽혔다. 이후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이 단체에 기부했고 지난달에는 '1일 간사'로도 일했다.

왜 자우림이었을까. 변혁에 대한 열망을 '운동권'이라는 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시민운동이라는 90년대 오버그라운드로 옮겨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참여연대. '홍대앞'으로 통칭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제도권 음악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 대표적인 인디 밴드 자우림. 어쩌면 둘 사이에는 강한 공통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통 찻집으로 옮겼다. 가야금 산조와 그윽한 차 향기가 가득했다. 뜨거운 모과차는 달콤했다. 여성이 보컬이어서 많은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린다는 김윤아의 불만(다른 멤버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밴드의 컨셉과 이미지 관리를 위해 광고에는 안 나간다는 설명, 본격적인 일본 활동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마무리를 위해 다시 물었다. "행복하겠다. 판도 잘 팔리고, 팬도 많고, TV에서도 인기고, 평론가들도 칭찬하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건가"라고.

"데뷔 초기, 갖가지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라는 요청을 뿌리치고 라이브 콘서트 위주로 활동 방향을 굳힌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런 고집을 버리지 않겠다."(이선규)

"어떤 뮤지션이든 4집 앨범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역시(내년에 내놓을)4집에서 큰 도약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김윤아)

"솔직히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고민이 많다. 더 생각해 봐야겠다."(김진만)

"음악적으로 잘 하는 부분을 더 잘 해야지, 부족한 부분을 메우겠다고 나서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잘한다고 인정받는 요소를 더 강화하겠다."(구태훈)

오케이. 이런 대답을 기대했다. 최소한 현재 자우림은 한국 모던록 밴드의 정상이다. 이 발랄하고 실력있는 밴드의 앞날에도 영광있으라.

자우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조인스닷컴 기자포럼(http://club.joins.com/club/jforum_cjh/index.html)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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