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칼럼] 시인보다 위대한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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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누구로부터 풋과일처럼 새큼한 고백을 받고 인생이 시구(詩句) 처럼 정결하리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얼골 하나 야
손가락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이 시의 작자가 정지용이란 것도 겨우 알아냈지만,그가 월북했다는 사실에 정말 깜짝 놀랐었다.그 험악했던 1960년대 월북 시인의 시는 글자 그대로 '불온 문서'였고, 그것을 주고받은 행위는 간단히 몇 년 교도소 감이었다.

반공 세대의 의문답게 '이런 시를 쓴 사람이 어떻게 월북을'하며 그의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그러다가 '금서'들이 대거 운동권 독서계에 출몰하던 80년대 초엽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 그리고 산문집 '문학 독본'을 비롯해 그의 전집을 해적판 영인본으로 구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때는 이미 인생이 '호수'처럼 정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였다.

김학동 교수의 '정지용 연구'(민음사·1987) 는 내 이런 치기(稚氣) 의 그물에 걸린 대어였다.

지용이 충북 옥천의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1923년 그의 나이 21살에 쓴 '향수'는 그 빼어난 토속어 바탕에다 멋들어진 선율까지 얹혀 지금은 시와 노래로 '겹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 시에서 김 교수는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반복되는 실향의 비애와 '전설의 바다'를 향한 근원 회귀의 본능을 추적한다.

고교 문예반 활동을 뒤로 '바다 건너' 일본에 유학하면서, 지용은 당대의 거성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의 시지에 작품을 발표한다.

귀국과 함께 그는 천주교 재단의 '경향 잡지' 편집을 돕는 한편 '가톨닉 청년' 등을 중심으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펼친다. 1930년대 조선 시단의 제왕으로 군림한 그는 뒷날 청록파로 불린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을 필두로 숱한 신예를 발굴해낸다.첫 시집 이후 지용의 시 세계는 크게 변모하는데,

여기 '구성동'같이 "이 '산'의 시편들은…'바다'나 '신앙'의 시편에서 보인 세속적인 갈등이나 동요 같은 것을 모두 해소한"(57쪽) 가히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바다와 신앙에서 산으로◀

꽃도
귀향 사는곳
절터ㅅ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다분히 노장 사상에 취했을 법한 이런 허정무위(虛靜無爲) 의 관조는 자연조차 초탈하려는 시인의 내적 침잠과 견인(堅忍) 의 산물이겠으나, 달리 그것은 암담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소위 '국민문학'에 협력하라는 일제의 강요에 지용은 "친일도 배일도 못한 나는 산수에 숨지 못하고 호미도 잡지 못하였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 시를 이어온 것인데"(1백49쪽) 라고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친일도 배일도 못해 시를◀

이런 고뇌는 해방 공간의 시대상에 대한 좌절과 거의 절필을 통한 성찰로 이어진다."한민당은 더러워서 싫고 빨갱이는 무시무시해서 싫다"(1백59쪽) 던 지용에게 은인 자중의 칩거야말로 유일한 선택이었으리라.

1950년 7월 자주 드나들던 친지들이 찾아와 "한참 이야기하다가 그들과 함께 잠시 다녀온다고 하고 아무 마련도 없이 집을 나간 뒤"(162쪽) 반세기가 흐른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어 월북이냐 납북이냐를 놓고 온갖 소문이 꼬리를 물었고, 그의 작품에 대한 판금과 해금 논란이 간단없이 뒤따랐다. 그런데 최근 북에 있는 지용의 아들이 남쪽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이산 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추측이 빗나가고 말았다.

최근 '세계의 문학'과의 인터뷰에서 밀란 쿤데라는 "소설가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문제 틀을 벗어나는 실존적 문제 틀에의 천착"이라면서, 소설은 소설가의 편견까지 극복해주기 때문에 "소설가보다 위대한 것은 소설인 것 같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런 관찰은 시인 지용의 경우에도 적합하다. 유물사관에 대한 질문을 받은 뒤 이를 공부한 적이 없어 과분한 숙제라면서 그는 "인류의 물질 생활이 생산과 노동의 관계를 떠나본 적이 없을 바에는…물질 생활에 유물사관이 성립된 것을 물리와 화학부 내에 물리학사가 있음과 같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1백60쪽) 이라고 답했다.

경제와 유물사관의 관계를 물리와 물리학사의 관계에 비긴 것은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무지의 가벼움'이겠으나, 거기 생산과 노동을 통한 물질 생활 영위라는 실존적 이해의 따스함이 담긴 것은 다시 이를 필요가 없다. 지난달 30일 생사조차 묘연한 그의 천도제(薦度祭) 가 '향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의해 진천 보탑사에서 거행됐다.

나의 림종하는 밤은
귀또리 하나도 울지 말라
나종 죄를 들으신 神父는
거룩한 産婆처럼 나의 靈魂을 갈르시라
聖母就潔禮 미사때 쓰고남은 黃燭불!

성모 마리아의 봉헌 예물처럼 정결하게 지용은 자신의 '임종'을 예비했을지 모른다.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벗기고, 그의 시를 시인보다 위대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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