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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꽃뱀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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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외로움만큼 공략하기 쉬운 마케팅 포인트도 없을 거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니 말이다. ‘꽃뱀’은 외로운 심성을 활용하는 사업 중 가장 악랄한 경우의 하나일 거다. 요즘 전국의 꽃뱀이 조만간 세종시로 집결할 거라는 소문이 돈단다. 관청들이 이전하면 독신생활을 하는 남성들이 넘치는 큰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에 관가에선 과거 대전청사로 이전했던 공무원들이 당했던 실례가 교범처럼 등장하기도 한단다.

 지식경제부의 한 공무원은 “우리 얼짱 사무관도 요즘 소개팅이 안 된다”며 푸념했다. 한때 맞선 시장의 블루칩이었던 경제부처 공무원이 곧 세종시민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명함도 못 내미는 신세가 됐다. 남편이 공무원인 후배는 최근 엄마 집 옆으로 이사했다. 이유는 “남편이 세종시에 가면 엄마 옆이 편하기 때문”이란다. 세종청사 총각은 애인을 못 구하고, 유부남은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하니 꽃뱀의 서식환경으로는 최상의 조건인 셈이다.

 관청 중 처음 세종시로 이사 가는 총리실 관계자는 말한다. “꽃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경계심도 있고, 동료들끼리 서로 감시해 상부상조하자는 분위기다.” 한데 과연 결의와 감시만으로 가능할까.

 과거 사건기자 시절, 몇몇 꽃뱀 사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판사·의사·교수·군인·공무원 등 의외로 전문직 피해자들이 많다. 부부와 가족들이 활동하는 가업형과 가족을 포함해 21명이나 활동했던 기업형 꽃뱀도 있었다. 이들은 집요하고 파괴적이었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과 아련한 옛 추억에 빠져 헤맬 즈음, 알고 보니 그녀가 꽃뱀인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식당이나 술집에 고용돼 바가지 씌우는 걸로 끝나는 좀 쿨한 ‘알바 꽃뱀’도 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꽃뱀이다.

 기막힌 건 피해자다. 꽃뱀에게 당하고도 ‘그래도 그녀가 나를 사랑했었다’고 믿으려는 남자들 꽤 있다. 이렇게 허한 ‘로맨스의 꿈’에 몸을 던진 남자들은 ‘이런, 찌질한 남자’ 하고 욕할 수만도 없는 딱한 경우가 많다. 또 별로 동정은 안 가지만, 여자만 보면 들이대는 ‘본능형 남성’도 피해자 명단에 오른다. 이들에겐 삼국지에 나온 미축(<9E8B>竺)의 에피소드가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대로 부호인 미축이 낙양서 거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젊고 예쁜 여성이 수레에 태워달라고 한다. 그 여인을 태워주고도 곁눈질 한 번 안 했더니, 그녀가 내리면서 하는 말. “나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그대 집에 불을 놓으러 가는 길인데, 내게 예의를 다하니 알려주오. 속히 돌아가 재물을 실어내시오.” 그녀에게 들이댔다면, 그는 화마에 재산을 잃고 알거지가 될 뻔했다. 제정신인 여자들은 들이대고 곁눈질하는 남자를 싫어한다.

 이십 수 년을 집 안팎에서 거의 남자들하고만 생활하지만, 여전히 모를 인류가 남성이다. 그래도 함께 늙어가는 내 남성 동료들을 긍휼히 여겨 여성 입장에서 해주는 충고가 있다.

 첫째, 로맨스를 꿈꾸지 마라. 드라마에서도 사랑의 승자는 돈 많고 잘생긴 주인공 한 명뿐이다. 드라마에서도 희귀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망상이다. 둘째, 매년 한 벌이라도 좋은 옷을 장만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신경 쓰고, 담배 끊고 냄새를 관리하라. 피하고 싶은 추레한 사람은 되지 말라는 말이다. 셋째, 설거지만 하지 말고 직접 음식을 해라. 요즘 할머니 모임에선 영감님 생존한 할머니가 동정의 대상이란다. 이엔 놀러 가려 해도 곰국 끓여놔야 하는 부담도 한몫한다. 음식에서 독립해야 부부관계가 편해진다.

 한마디로 여성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라는 얘기다. 홀로 외로움을 즐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는 건 필수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개인들은 더 외로워질 것이고, ‘외로움을 즐기는 힘’은 미래의 핵심경쟁력이 될 거다. 또 세종시에 가거든, 자신이 외로운 처지가 된 근원을 찾아 전국이 고루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열정을 불태우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