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현장에도 조용한 '황색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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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한국계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일으킬 '황색 바람' 역시 멀지 않아 보인다. 물론 감독이나 제작자의 특성상 배우처럼 단박에 스타로 발돋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미 미국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거나 영화계 바닥에서 거슬러 오른 제작자·감독들이 하나 둘 할리우드 본류에 편입함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케 한다.

최근 한국계 여성 감독 크리스 유(32)가 할리우드 스타 웨슬리 스나입스를 제작자로 영입해 '쇼트 커밍스'의 제작에 들어간 것이나 제작자 패트릭 최(35)가 영화 '와처'에서 키아누 리브스를 기용,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한국계의 성공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할리우드의 제작자로 입지를 굳힌 인물로는 노소윤(35)·박선민(35)·패트릭 최 등이 꼽힌다. 할리우드에서도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기로 이름난 제작사인 윙클러의 부사장으로 일하다 최근 윌 스미스 오버브룩으로 자리를 옮긴 노씨는 USC(남가주대)에서 시각인류학 석사를 받은 후 1994년 영화 제작 일선에 뛰어들었다.

윙클러에서 기획담당 책임자로 일한 지 1년 만에 부사장으로 급성장한 그녀는 작가나 에이전트, 감독들과 폭 넓은 교분으로 할리우드 마당발로 통한다. 발 킬머와 미라 소르비노 주연의 '앳 퍼스트 사이트'와 니컬러스 케이지가 출연한 '벰파이어의 키스' 등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특히 노씨는 남가주 한국 입양인 협회를 만들어 한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오픈 유어 아이즈' 등 스페인 영화를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배급시키며 두각을 나타낸 박선민씨는 89년 미국 영상 컨설팅 회사인 맥스 미디어를 설립,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미국 영화전문 주간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주목할만한 제작자 1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톰 크루즈와 공동으로 '디 어더즈'를 제작할 계획이다.

'와처'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패트릭 최는 독립프로덕션 인터라이트 픽처스를 이끈다. 최씨는 '와처'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할리우드의 한인 감독으로는 그렉 박·에이브러험 임·크리스 유·크리스 찬 리·리처드 김과 뮤직비디오의 조셉 칸 등이 기대주들이다. 연출 분야의 한인들은 제작자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패기 있고 능력 있어 오히려 더 희망적이다.

미국 독립 영화계의 거장 로버트 알트만 감독 영화로 제15회 선댄스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쿠키의 행운'을 편집했던 에이브러험 임은 올해 미 독립영화제에 장편 영화 '도로와 다리들'을 출품,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주연·각본·감독·편집·제작 등 1인 5역을 해낸 임씨는 알트만 감독이 '도로와 다리들'의 제작자로 나섰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한국계 2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옐로'(98년)를 제작·감독한 크리스 찬 리(31)는 할리우드 영화업계에 아시아계가 출연하고 제작한 영화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감독.

이 작품은 LA타임스·시카고 선 등 유력지로부터 "강한 감동을 주는 성공한 영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문화 충격"이란 격찬을 끌어내면서 화제가 됐다. 그는 두번째 작품 '헬륨'에서도 한인 젊은이 8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의미있는 작업'을 고집하는 그의 경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무 살에 뮤직비디오 제작에 손 대 지금까지 1백50편여편을 만든 조셉 칸(27)은 미국내 10대 뮤직 비디오 감독 중 한명으로 통한다. 엘튼 존·브라이언 애덤스·윌리 넬슨 등 쟁쟁한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한 그는 곧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할 예정. 그가 뉴 라인 시네마와 함께 제작할 영화는 젯 리(李連杰)을 주연으로 구상하고 있다.

또 단편 '할아버지의 도전' '마우스' '미스터 리'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후 장편에 도전하는 그렉 박 등도 할리우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인 감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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