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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개천에서 용이 계속 나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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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박민제
탐사팀 기자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1970~80년대에 학생 신분이었던 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법한 고시 합격 수기 모음집 이름이다. 누구나 어려웠던 그 시절.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통해 인생 역전 드라마를 썼던 사람들은 이 책에 실린 사례 말고도 주변에 많았다. 가진 것은 없어도 노력 하나만으로 삶을 180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수많은 ‘개천의 용’들은 전국 고학생(苦學生)들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자수성가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본지가 25개 로스쿨 1~3기생 5074명의 주거지를 분석한 결과 부촌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 3구 학생 비율은 16.7%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인 강남 3구가 로스쿨생 5명 중 1명을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로스쿨은 ‘다양한 경력의 전문 법조인 양성’을 내걸고 출범했다. 기존 사법시험 제도가 대학 전공 공부는 포기한 채 시험 기술만 익히는 ‘고시 낭인’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법률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경력을 갖춘 법조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반영됐다. 하나 로스쿨 출범으로 경력은 다양해졌어도 경제력에서만큼은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로스쿨에 들어가려면 10~40%가 반영되는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면접은 국제적 감각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평가 잣대다. 이를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된다.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이런 경력을 갖추라는 것은 무리다. 로스쿨 2기생인 정모(33)씨는 “면접이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한 강남 학생들의 로스쿨 점령은 계속될 것”이라며 “객관적 평가의 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로스쿨 졸업 자격을 주는 ‘예비시험’ 제도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사립대 기준으로 연 2000만원 수준의 비싼 로스쿨 학비를 감당치 못하는 이들에게 숨통을 틔워 주려는 시도다. ‘고시 낭인’의 재등장을 막기 위한 응시 횟수 제한 등의 조건을 갖춘다면 고려해 볼 만하다. 현재 10% 수준인 저소득계층을 위한 특별전형 비중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도서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다. 아픈 청춘들이 많은 이유는 보다 나은 삶으로 옮길 수단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에 대한 상투적 위로보다는 실질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비단 로스쿨만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개천의 용’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