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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헷갈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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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방현
사회부문 기자

4·11총선을 사흘 앞둔 8일 오후 5시 대전시 서구 갈마네거리. 이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A후보가 개인 유세를 했다. 상당 부분을 공약 소개에 할애했다. “마을 도서관과 주차장을 곳곳에 건립하겠다”거나 “노후한 주민센터도 리모델링하고 복지센터도 새로 짓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공약들은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나왔던 내용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도서관이나 주차장은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 내세울 공약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공약은 헌법기관으로서 ‘입법활동’과 ‘정부 예산 심의’를 주로 하는 국회의원의 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A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 공보물에 실려 있는 후보들의 공약은 거기서 거기였다. 총선에 나온 대전지역 후보 대다수가 주차장 건설 공약이나 도로 건설, 공원 정비, 육교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공약했다. 서구 지역 B후보는 4년 전 18대 총선 때 내걸었던 ‘○○○동 도서관 건립’ 공약을 고장 난 녹음기 틀 듯 다시 제시했다. 게이트볼 전용구장 설치를 내세우는 후보도 있다. 고령자 표를 겨냥한 공약으로 보이는데 국가 비전을 논의하는 국회의원 공약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실현 자체가 어려운 공약도 많다. 경북 구미 C후보는 50층 규모의 박정희컨벤션센터 건립 등을 약속했다. 천문학적 예산(4000억원)이 필요하지만 재원 마련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어차피 지키지 않을 ‘공약(空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인천지역 D후보는 인천국제병원 건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인천시에서 추진 중이다. ‘숟가락 하나 더 얹자’는 식이다.

 총선 후보들의 무분별한 공약 제시 바람은 지방자치나 교육자치 선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세종시장과 세종시교육감은 임기가 2년에 불과해 공약 실천에 제약이 많다. 그런데도 “제2청와대와 국회 분원을 건립하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임기 내 실현이 사실상 어렵다는 게 주민들의 시각이다.

 이런 함량 미달의 공약이나 과도한 공약, 헛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에도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66조에는 대통령과 단체장은 추진계획을 담은 선거 공약서를 만들도록 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은 이 의무에서 제외돼 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서 자신들은 대상에서 뺀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마을 도서관이나 주차장은 지방의회 의원에게 맡겨라. 그리고 지역 경제·교육·도시설계 등에 기여할 수 있는 큰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 이름값을 하지 않을까.